내가 둘째를 시우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by 돌돌이


아들은 나와 함께 잔다. 침대에선 아들이, 침대 밑에선 내가 이불을 깔고 잔다. 출근을 하는 날이면, 아들을 재워놓고 나오지만, 요즘은 그냥 아들의 방에서 아침까지 함께 잔다. 둘째 출산일이 하루,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아들의 어리광은 늘었다. 우리는 아들에게 동생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고 이제 형아가 된다며 박수도 쳐주었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은 이모와 할머니가 올 것이며 엄마는 뱃속의 로또와 함께 올 거라 당부 또 당부를 했다. 자신의 삶이 바뀔 것임을 알기라도 한 걸까? 아들은 더 떼를 쓰고 아빠와 엄마와 있는 시간을 늘린다. 평소보다 애교를 부리고 사랑한다며 안아준다. 그런 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은 아들 방에서 잠을 잤었다. 아들이 자다가 새벽에 깨는 날이면 내가 아래에 있는지 확인한다. 내가 코를 골고 자고 있거나 내 대답을 들으면 아들은 다시 잠든다. 소변이 보고 싶어서 깨거나 뒤척이다가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 아빠를 찾으며 운다. 혼자 자는 습관을 들여놓았지만, 둘째가 태어날 것이기에 아빠랑 함께 재우며 전담마크 하기로 결정했다. 어린이집을 갈 때도 내가 함께 가는 날엔, 아내 혼자 데리러 갈 때보다 시우의 기분이 좋다. 아빠가 왔다며 선생님에게 자랑(?)을 하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을 하원과 동시에 이야기한다. 아내는 내가 데리러 간 날은 말이 더 많아진단다. 회식, 학회, 연장근무 등으로 내가 집을 비웠을 때는 나를 찾는 빈도만큼, 엄마를 찾는다. 장난반 진담반으로 ‘엄마’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린다는 아내를 공감할 수 있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그간 아들이 받아오던 관심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그 간극을 메우고 아들이 서운해하지 않도록 내가 더 다가갈 예정이다. 배를 아파가며 태동을 느끼는 아내는, 둘째에 대한 모성이 확실하다. 하지만 남자이자 남편인 나는 어떠한가? 첫째 아들인 시우와 시간을 보내면서 총각 때 느끼지 못했던 사랑과 감동을 배운다. 아들과 함께한 시간은 나라는 존재가 경험치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것은 시우였다. 내가 둘째를 시우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일어나자마자 아빠를 찾고 나를 안아 주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우리 아들. 아빠라는 단어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며 함께 놀고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쌓은 라포는 그 어느 것보다 끈끈한데. 나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두고 둘째를 같은 정도로 사랑할 수 있을까?



P.S - 이러한 감정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니란다. 특히 아빠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데 나중엔 둘째가 더 사랑스러울 거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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