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들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간호사 생활 12년째.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놀라울 때가 많다. 일을 하면 할수록,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옷차림과 분위기에서 드러나는 아우라는 편견이라고 치부하기엔 p값이 0에 수렴한다. 우선 환자나 보호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내가 아프고 가족이 아파서 왔으니 본성이 알게 모르게 드러난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적인 패턴을 보이는 것처럼, 병원에서는 환자로 입원해 있다 보니 자신의 밑바닥의 모습도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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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의 양말 감별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관상전문가 이기도 하다.(좆문가라고 표현한다지?) 관상과 인상착의가 주는 거부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들의 태도와 말투는 그들이 살아온 삶을 유추할 수 있다. 예의 바르고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어른들을 볼 때면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어른들은 자녀와 배우자들도 예의가 바르다. 호랑이한텐 호랑이 새끼가 나오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에겐 그만한 자식이 나온다. 콩을 심으니 콩이 나오고, 부모라는 훌륭한 본보기를 보고 자라는 자녀들은 그 부모의 모습을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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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할 때면 선생님이 매번 하는 말이 있다. 시우가 말이 많다는 것이다. 체험활동을 하러 가는데, 버스를 타기 전부터 돌아올 때까지 한마디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단다. 다른 어린이집 친구들도 덩달아 시우의 말투를 따라 한다. 아이들과 선생님께 미안해진다. 아내는 내가 말이 많으니 아들이 그대로 보고 배우는 거란다. 사실 전화통화를 흉내 내는 것도 매번 아내와 내가 하는 통화의 모습과 같다. 이런 아들을 볼 때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귀에서 피가난 다며 푸념하기도 한다.
말이 많은 아내와 나 덕분인지, 또래 중엔 우리 아들이 말을 제일 잘한다. 우리가 쓰는 사투리를 따라 하고 차에서 운전하면서 뱉은 말들도 기억했다가 두서없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오토바이 또 이런다. 택시 진짜 문제네. 대박이다. 잠시 비켜줄래? 양아치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아들이 한 말이다. 내가 운전을 하면서 했던 말을 시우가 기억을 하고 갑자기 꺼내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선 말을 더 조심하게 된다. 특히 양아치라는 표현을 운전을 하면서 쓴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아들은 나에게 언어를 배운다. 그리고 아들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토리야 잠시 비켜줄래? 근데 말 진짜 안 듣는 가배?]
P.S - 만 2세의 아이에게서 ~가배라는 네이티브 경상도인이 쓸법한 언어라니. 말조심 또 조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