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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Oct 05. 2023

양말을 보면 내시경의 방향이 보인다

내가 내시경실 간호사인지 양말 감별사인지 분간이 안 간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수면 진정이 잘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옷차림과 행동을 보면 협조가 잘되지 않을 거라는 것과 수면, 진정이 잘되지 않을 것이란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특정 옷 스타일을 보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통계적인 의미가 없지만 내가 경험한 케이스를 기준으로 적어본다. 약물이 들어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수면에 빠지고 중간에 깨더라도 추가적인 약물 투여 후엔 반응이 사그라들기 마련이지만, 검사를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움직임을 보이고 역설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공통적인 스타일이 있다.


1. 등산복, 등산화를 입고 온 사람


 이유는 모른다. 산을 좋아하고 풍류를 아는 분이라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술을 안 드시는 분이라도 약물 투여 후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두 세명이 몸을 잡고 겨우 검사를 끝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등산복이 흔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신발까지 등산화로 야무지게 맞춰 입고 온 사람은 긴장하고 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2. 흰색 상의와 바지, 흰색 구두를 입고 온 백의민족 또는 원색 패턴의 패션리더


 검사실을 환하게 밝히는 백의민족과 원색으로 코디한 패션리더들은 열에 아홉은 검사 때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예전에 검사자가 신었던 흰 구두가 저 멀리 침대 밖으로 날아간 적도 있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 일까? 검사 중에도 그들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온몸으로 말한다. 주사라도 빠져서 피라도 묻을까 노심초사하며 손을 잡고 환자를 고정하며 검사를 끝내고 나면 그들은 검사 중 했었던 자신의 행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대부분 환자들은 자신이 움직이고 내시경을 빼려고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3.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사람


 여름에도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사람들은 대부분 중간에 소리를 내거나 움직인다. 얌전한 목소리와 조용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검사만 들어가면 가만있지 않는다. 셔츠를 바지 안으로 1mm의 오차도 없이 넣거나 벨트와 셔츠와 바지의 라인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 있는 사람의 경우 조심을 해야 한다. 억압에 대한 반작용일까? 약물이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침대가 들썩일 정도로 움직인다.


4. 검사실에 들어와서 잘 부탁한다며 90도로 인사하는 사람


 목례나 인사말이 아니라 정말 90도로 인사하며 '잘 부탁합니다'라고 크게 말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무조건 약물을 증량해서 확실해 재우고 검사를 해야 한다. 내시경은 의식하 진정(환자의 의식을 완전히 소실시키지 않고 검사에 필요한 정도의 진정상태를 유도하는 것) 상태로 검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담당 교수에게 이야기를 해서 추가로 약물을 투여하고 검사를 진행한다. 기존 가이드라인에 해당하는 약물 용량은 이분들에겐 효과가 없다. 보통 투여하는 약물의 두 배는 투여해야지만이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지 못한다. 검사가 끝나고 수면이 깨고 나면 역시나 자신의 행동을 기억 못 한다.


5.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오는 사람


 흔하진 않다. 왜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축구 선수용 양말을 신고 온 사람은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애초에 다른 선생님들에게 내시경이 목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손을 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6. 망사 양말을 신은 사람


 흔히 신발을 신고 바지를 입어도 양말은 볼 수 있다. 그런데 양말이 망사다? 그럼 긴장부터 한다. 이쯤 되면 내가 내시경실 간호사인지 양말 감별사인지 분간이 안 간다. 하지만 망사 양말을 신은 어머님들은 움직임의 정도나 협조 정도가 떨어진다. 문제는 망사양말을 신은 남자분이다. 딱 두 명 있었는데, 두 명 다 협조가 잘되지 않았다. 내시경실 식구들이 다리 하나 팔하나씩 겨우 잡고 말려서 검사를 마친 기억이 있다. 비수면을 권고했지만 환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7. 슬리퍼 신고 온 사람


 슬리퍼만 신고 오거나 편하게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움직인다.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그런 걸까? 수면 내시경의 경우 검사 후에 침대에서 내려올 때 신발을 신다가 넘어질 위험이 있어서 신발을 신은 채로 검사용 침대에 올라가라고 한다. 하지만 슬리퍼를 신은 사람은 그냥 신발을 벗고 올라간다. 움직이다가 분실할 수도 있고 발버둥 치는 환자의 신발에 한대 맞았던 경험이 있어선지 슬리퍼에 양말을 안 신고 온 사람은 긴장부터 한다. 한 겨울에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고 왔다? 그럼 100% 다.


8. 문신이 많은 사람


 문신이 많고 덩치가 큰 흔히 조폭 스탈의 환자의 경우 긴장부터 한다. 협조는 되지 않고 너무 몸부림쳐서 깨운 적이 있었는데, 왜 수면을 안 해줬냐며 폭력을 행사한 사람도 있었다. 편견일 수 있지만 옷처럼 팔과 다리에 문신을 두른 사람은 검사 협조가 잘되지 않는다. 수면도 잘되지 않지만 무엇보다 내시경이 목 안에 들어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크게 느껴서 그런가?


9. 젊은 사람


 특히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경우 수면이 잘되지 않는다. 그래도 약물을 많이 투여하고 빨리 검사를 마무리하면 진행하는데 문제는 없다.


10. 날씨가 흐린 경우


 환자들이 보통 때보다 많이 움직이고 협조가 되지 않으면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모른다. 이걸로 논문을 쓰고 싶을 정도로 맑은 날과 흐린 날의 환자 협조도는 차이가 있다. IRB가 통과할리 만무하지만 이그노벨상을 노려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혹하긴 한다.


 이러한 의견과 생각은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확증편향이 작용해서 특이했던 사람들만 기억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재되어 있는 스타일의 검사자가 들어오면 긴장부터 하게 된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예를 들어 보자. 날씨가 흐린 날에 빨간색 등산복과 등산화로 매칭을 한 남자가 검사실로 들어온다. 흰색 등산양말을 무릎까지 신었고 등산 외투안엔 단추가 목 끝까지 채워진 셔츠를 입었는데 약물을 투여하기 위해 팔을 보니 문신을 가득해서 혈관이 잘 보이지도 않은 젊은 남자가 검사 전 잘 부탁한다며 90도로 인사를 한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는 것이 이런 걸 말하는 거구나.


P.S- 과거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수정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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