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열흘 동안 한번 해보자.
이제 진짜 시작이다. 아내 간병이라는 핑계로 2박 3일의 자유를 만끽했다. 일요일에 아내를 조리원에 보내고 아들이 있는 집으로 간다. 열흘 동안 아들과 함께 할 예정인데, 아내 출산 기간 동안 보지 못해서 시우가 무척 보고 싶다. 우리가 없는 동안 장모님과 처제가 아들과 함께 해주었다. 수면, 놀이, 식사, 간식시간등 우리가 정해놓은 패턴은 잊고 즐기고 있다. 아들입장에선 밤늦게 까지 놀 수 있고 뛰어도, 장난을 쳐도, 정리를 하지 않아도 혼내지 않는 이모와 할머니가 좋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와 아빠를 찾지도 않는다.
아들이 아빠와 엄마를 찾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를 싫어하거나 미워하진 않을 것이다. 더 보고 싶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잘 안다. 이제 만 3세가 되는 눈치 빠른 아들은 동생이 온다는 것도, 자신이 형아가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들은 우리에게 삐졌다. 엄마와 아빠가 오지 않아서 영상통화를 하는 중에도 아들이 삐진 게 느껴졌다. 서운해하는 아들에게 아빠가 내일 갈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는 열밤 더 자고 간다고 하니,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세상의 전부인 소중한 아들을 두고 자리를 비웠다니. 집에 가자마자 꼭 안아 줘야지. 아들이 좋아하는 기가노토사우르스(10만 원이 넘는 장난감…)를 사 들고 집에 갈 예정이다. 우리가 집에 올 때 무엇이 가지고 싶냐고 물었다. 아들은 똘똘하게도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집에 갈 땐 공룡을, 아내가 조리원을 퇴소할 땐 자동차를 사들고 집에 갈 예정이다.
시우가 보고 싶고 혼자 두는 게 걱정이라던 아내는, 조리원의 자유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다. 자기 삶의 마지막 자유를 누리는 것 아니냐며 기대하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시우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한다. 보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아들과 단 둘이 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평일은 어린이 집을 가지만, 주말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주말에는 시우의 고모들도 놀러 오라 하고 시우의 이모에게도 헬프를 요청할 생각이다. 아들은 내가 있으면 나랑 놀려고 한다. 엄마보단 아빠가 호응이 좋아서 그런지 무조건 아빠를 불러 놀이에 참여시킨다. 아빠를 좋아하는 아들이 고맙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나만의 시간을 주면 주길 바란다.
이래나 저래나 아들과 단 둘이 보낼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지. 내일이 되면 분노의 글을 써내려 갈 수도 있다. 그럼 어떤가?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이 있고 가정이 있는데.
P.S - 아내가 너무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내가 대답한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말 해. 시우 어린이집 가기 전에 입은 옷 사진 찍어서 보내. 오빠가 입는 이상한 스타일로 입히지 말고. ]
그래. 믿음을 주는 건 내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