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국 Mar 12. 2024

이사를 하며

오롯이 나로 존재 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이사를 온 지도 10여 일이 지났다. 같은 아파트의 동만 옮겼지만 손없는 날에 이사를 했기에 가격은 사악했다. 비싼 가격을 냈지만 버리는 짐들이 워낙 많아서 예상가격보다 이십만 원을 더내고 이사를 마쳤다. 남동향이 아닌 남서향으로, 25평에서 33평으로 옮겼다. 층수는 두 개를 내려왔지만 여전히 고층이었고 입구동으로 내려온 것이다. 해는 잘 들어와서 집은 따뜻했지만 거실뷰는 아파트 단지를 보고 있기 때문에 아쉽긴 했다. 예전집은 바다가 보이고 일출이 보였지만 새벽 일찍 들어오는 햇빛덕에 암막커튼이 필수였다. 남서향이 우리 삶의 방식과 더 잘 맞았다.


인테리어가 되어 있던 집


 이사를 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기존의 짐들을 전부 버리고 왔다는 점이다. 아들의 미끄럼틀, 타요 자동차, 책장, 침대. 기타, 앰프등 많은 것을 버리고 왔다. 구매를 한 것보다 버리고 온 것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엔 필요한 것들 뿐이다. 최소한의 짐과 서랍장과 책장이 있으며 팬트리에는 서랍에 들어있던 짐들을 넣었다. 소파를 넣었지만 시공매트를 깔고 나니 집이 넓어 보인다. 집 크기가 크기도 했지만 짐을 버린 것이 유효했다.


 안방에 자리를 차지하던 기타와 엠프를 아버지 친구 분께 드렸다. 나의 20대와 30대를 함께 했던 기타를 그냥 드리려니 섭섭하기도 했다. 벽에 걸거나 디스플레이라도 할까 고민했지만, 기타는 소리를 내는 악기인지라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에 내 소중한 기타를 드리는 것이 아깝진 않았다.(펜더 기타란 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책장과 함께 버리고 왔다. 좋아하는 책을 소유한다고 해서 내 머릿속의 지식과 세상에 대한 관점은 바뀌지 않으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스무 권 남짓은 들고 왔다.)


길고 넓어진 복도와 거실


 이사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둘째가 태어나면 살던 집이 좁을 거란 생각을 해서다. 이사를 하면서 가구와 짐들을 이번에 마음먹고 버린 것이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집을 내놨고 거기에 추가로 집값을 더 낮추어 매매계약을 했다. 매매가 확정된 이후에 우리도 같은 아파트 단지의 33평 집들을 보러 다녔다. 가격이 생각보다 싼 집도 있었고 터무니없이 비싼 집도 있었다. 지금 이사 온 집은 아내가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집이다. 가격은 비싸도 우리가 마음에 드는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이전 거주자가 깔끔하게 집을 써도 손볼 곳은 많았다. 시스템 에어컨도 하고 패밀리 침대와 소파, 식탁을 넣고 도배를 하고 시공매트와 화장실, 베란다, 현관 타일 교체, 인테리어 수리 등등을 하느라 이모저모 신경 쓸게 많았다.


아들이 찍어준 나

 내 목표는 3년마다 이사를 가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집에 신경을 쓴 게 아까워서 좀 더 살고 싶다. 직장까지 버스로 20분 거리이고 자차로 가면 10분이면 도착한다. 장모님 댁과 5분 거리, 부모님 댁과 15분 거리이다. 아내는 이곳에서 오래 살고 싶단다. 이사를 오고 나니 행복을 체감한다. 식탁에 커피를 마시며 아내랑 대화하는 게 즐겁다. 이전 식탁에는 온갖 짐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티슈 하나가 전부다. 이 행복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지금은 집에 올 때마다 즐겁고 행복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지. 오롯이 나로 존재 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고마운 아내. 고마운 아들들.



P.S - 정부의 신생아 특례대출은 우리가 이사를 올 수 있게 만들었다. 부동산 정책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애를 둘을 낳아야 호텔 뷔페에 데려가 주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