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넘어 말문이 막힌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lfare-medical/2024/03/27/3V6GJUCGBFE5RHPXRUA5673LLE/
기사 제목이 이상하다. 회사가 밤 10시까지 육아를 지원해 줘서 젊은 인재들이 몰려온다는 그럴듯한 제목이다. 사실 회사 내에 보육시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직장이다. 그런데 저게 지면의 첫 장을 장식하는 기사라는 게 씁쓸하다. 아이가 행복이라는 묶음으로 기사가 나오고 있지만 저 기사를 보면서 행복을 유추할 수 있을까? 10시까지 아이를 맡기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좋은 회사에 입사하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높은 연봉의 복지가 좋은 회사는 내 아이의 보육도 도맡아 한다. 나는 이제 내 일과 커리어에 전념하면 된다. 그러니 좋은 회사는 이러한 회사처럼 보육서비스를 늘려야 하고 정부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기사 말미에는 아이가 행복입니다 라는 태그도 해놓았다.
내가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지만, 손꼽힐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기사였다. 20년생, 22년생 아이가 있는 직장인은 8시까지 야근을 해도 크게 마음을 졸이지 않는다는 말로 기사를 시작한다. 왜냐고? 10시까지 아이를 봐주는 곳이 있으니까. 난 대기업에서 일을 하지 않고 그들의 연봉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들의 입장에선 잔업이 잦아지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회사는 일할 환경을 만들었으니 일만 하면 된다고? 아이가 행복이라면서 8시, 10시에 마치면 아이가 씻고 잘 시간 아닌가? 늦게까지 일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 원 없이 잔업하고 야간 근무를 해도 되는 건가? 2024년에도 여전히 가족과 평일 저녁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아이의 아빠가 이 기사를 보니, 출산과 육아의 마음은 싹 사라진다.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어린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20년생, 22년생 아이들의 관점은 어떨까? 사내 어린이집은 아이들을 위해 원어민 교사도 있는 훌륭한 곳이며 회사 차원에서 행해지는 육아휴직과 지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가 봐도 부러운 회사의 서비스지만 왜 근무 시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까?
‘ HD현대(옛 현대중공업그룹)는 2022년 신사옥 HD현대 판교 GRC를 열었다. 사무·연구직들은 서울을 벗어나더라도 경기 판교 이남에서는 근무를 꺼리는 ‘취업 남방 한계선’을 고려했다. 본업(本業)인 조선·해양, 정유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분야 등 연구·개발 인력 확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대표 IT 기업과 ‘일하고 싶은 직장’ 경쟁을 시작한 HD현대가 가장 관심을 쏟은 시설 중 하나가 드림보트였다. 드림보트 어린이집 개원(2023년 3월) 후 그해 HD현대 그룹 신입 공채 지원자는 전년 대비 307% 늘었다. HD현대 관계자는 “이직 의향도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며 “‘일·가정 양립 지원’이 인재 확보로 이어졌다”라고 했다.’
취업 남방 한계선이라는 표현을 기사 덕분에 배웠다. 그리고 밤 10시까지 하는 어린이집 덕에 인재가 확보되었다고 한다. 난 출산율을 좀먹는 건 이런 기사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일간지라면 근무 시간에 대한 논의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가 미래라면서 어린이집에서 하루 내내 있을 아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족이 만드는 행복을 이야기하고 더 많은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직언은 어디에도 없다.
P.S - 무지해도 문제고 모른 척 해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