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노트를 쓰던 그때를 생각하며
ERCP방에서 3개월간 시간을 보내고 일반 내시경실로 돌아(?) 왔다. 지금 있는 곳은 초음파내시경이 있는 방이고 초음파 확인 후 바로 시술을 하기도 해서 노동의 강도가(?) 다른 방 보다 높다. 일복이 많은 나는, 한주에 40 케이스가 넘는 ERCP를 했다. 신환이 15명이 넘었고 한 명은 fail 했다. 인터벤션에서 PTBD를 하고 aov로 가이드 와이어를 내리는 랑데부 시술을 했지만, 이렇게 fail 한적은 내생에 세 번째였다. 내시경으로 접근이 힘든 위치에 게실이 있었고 aov는 오른쪽 상단에만 겨우 잡힐 뿐이었다. 운 좋게 가이딩을 해도 PD만 들어갈 뿐. 마이크로나이프를 사용할 공간도 없었고 아무리 해도 접근조차 되지 않아서 한 시간을 시름하다 포기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납옷을 입고 일하다가 가벼운 옷으로 일을 하니 부담이 없다. 신기하게도 내가 ERCP에서 나오고 나니 시술 케이스가 절반으로 줄었다. 그 흔한 신환도 없이 f/u 케이스만 있는 스케줄이었다. 나는 일복이 많구나 생각을 하며 검사를 한다. 그만큼 일을 많이 하고 특이한 케이스를 많이 하면 경험치가 쌓인다. 게임과 같은 거랄까?
나는 내시경실에서 일하는 동안 1년간 오답노트를 적었다. 그리고 시술방을 처음 했을 때도 1년간 적었다. ERCP 1st 간호사가 되어서는 기간에 상관없이 내가 실수하고 실패한 케이스를 적어나갔다. FNA를 처음 할 때의 실수, PTCS 준비 물품 누락은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을 하는 간호사라면 똑같은 실수를 해선 안된다. 내가 동료 선생님들에게 매몰차게 이야기할 때는 무지한 행위로 인해 환자에게 해를 끼칠 거라는 판단이 들 때다. 애초에 사소한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기본이 되는 것들은 지켜야 한다.
시술방과 ERCP만 하다가 초음파 내시경을 보니 재미가 있다. 손을 맞춰서 검사를 끝내는 맛이 있다. 그리고 펠로우선생님이 mm과 sm층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거나 ectopic pancreas를 보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느낌이 묘하다. 예전에 내가 했었던 고민들을 똑같이 하고 있구나. 진단은 내 몫이 아니지만, 밑도 끝도 없는 판독을 해선 안되니 눈을 크게 뜨게 봐야 한다. 종종 내시경실 방을 맡고 있는 간호사에게 layer에 대해서 질문하거나 병변 위치, cancer 모양, 바렛의 특징등을 질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그들이 알기를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 뿐, 다른 간호사들의 몫은 아니니까.
예전에는 snare로 한 번에 제거되지 않거나 perforation이 생긴 케이스가 있으면 상황을 잊지 않으려고 퇴근 전에 당시의 상황을 적고 집에 가서 리뷰 했었다. suction을 하지 않고 오히려 스네어가 빠지는 방향으로 시스를 밀어서 병변을 놓쳤지만, fibrosis와 RS juction의 위치상 스콥 고정이 안되어서라고 이유를 적어놓았다. 무지했지만 열정적으로 일을 했었다. 틀린 답을 적어 놓고선, 나름 원인을 찾았다며 뿌듯하게 적어 놓았으니까.
P.S- 지금은 무덤덤하게 시술을 하고 일을 한다. 일은 재밌지만,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일찍 퇴근한다. 퇴근 후 육아라는 일은 다시 또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