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매번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있어서구나
요즘 삶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 해결되지 않는 생각들을 하며 살고 있다. 내 삶에 여유가 없어선지, 아니면 여유가 넘쳐선지 모르겠다. 일에 치여 사는 시기엔 이런 걱정과 고민을 하진 않았으니까. 나라는 인간에게 사유의 시간은 사치인 걸까? 고민하고 골똘히 멍을 때린다. 가족과 함께 다대포 갈맷길을 산책하다가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나를 모르고 나를 찾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있고 싶어. 삼랑진의 카페에서 커피를 먹거나 연고가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애 둘 있는 아빠가 배가 불렀구먼.]
부쩍 대학생 때가 생각난다. 부산에서 진주까지 걸어갔었다. 땅끝마을이 목표였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해외여행과 좋은 여행지들보다 그 당시가 떠오른다. 아마도 7월이었을 거다. 날은 덥고 땀에 젖어서 하얀 소금기가 생길 정도였다. 매일 20킬로를 넘게 걸었다. 4일인지 5일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걸었던 순간은 기억난다. 고가대로와 자동차 전용도로, 자전거를 타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에게 파이팅 하라며 손을 흔들어 주는 것까지.
걸어서 어딘가를 가는 행위가 나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주진 않는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생 고생을 하는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마트 폰도 없었고 숙소와 주변 지리도 알 수 없었다. 폰을 볼일이 적으니 날아가는 나비도 보고 폐교를 우두커니 지켜보고 추억에도 잠겨 보았다. 사이비종교 단체도 봤고 쭈쭈바를 사 먹고 평상에서 쉬면서 다른 국토종주팀을 보며 느끼는 감흥도 새로웠다. 물집을 터트리고 쓰라린 발을 안고 모텔 문 앞을 나서던 그 기분, 그와 대조적으로 빛나던 아침의 기억, 맛없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걷다가 이걸 왜 하는지 생기던 의문들.
당시엔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 누워서 하는 배부른 고민을 하지 못했다. 내 눈앞에 놓인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명확한 사실만 존재할 뿐. 그때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롯이 나 자신을 느끼고 싶어서 떠났구나 싶다. 나라는 놈은 길 위에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구나.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를 가는 여정이 내가 찾는 길이구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어도, 도착을 하더라도 다시금 새로운 길 위에 서야 하는 게 인간이구나. 내가 지금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매번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있어서구나.
p.s -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지만 나 자신도 부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