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길을 잃은 적이 없다. 스마트폰만 켜면 버스는 언제 오는지, 어떤 루트와 경로가 가장 빠른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출퇴근으로 차가 막히는 경우 혼잡함이 없는 도로로 안내해 주고, 교통사고가 난 곳은 에둘러 알려주기도 한다. 처음 가는 곳도 목적지나 주소만 알고 있으면 손쉽게 갈 수 있다. 위치 정보가 아주 세밀하게 조정되다 보니 실시간으로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면서 길을 찾는 것이다.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여정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최소 거리와 효율성이 주는 달콤함은 여정의 중요성을 잊게 만들었다. 잊었다기보단, 알면서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갈 곳만 정해지면 길을 잃을 수가 없다.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다. 길을 잃어도 즉시 방향을 수정하기 때문에 길은 통한다는 옛말을 느끼기 어려워졌다. 길이 통함을 느끼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해 버리니까.
길은 통하지만 걷다 보면 막힌 길과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목적지로 향하지만 그 여정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 있다. 그런 여정을 따라가는 길엔 내 발자취가 남는다. 그런데 주어진 방향을 모퉁이 단위로 알려주는 효율성은 내가 남기게 될 발자취를 표준화해버린다. 최고의 효율을 계산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그만큼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우연도 앗아 간다. 사실, 쇼핑을 할 때도 우리는 가성비를 중요시한다. 가격 대비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수많은 제품을 검색해서 성능과 후기를 따져가며 선택하는 것이다. 효율을 따지는 것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시간, 돈, 디자인, 성능 등 그 차이가 크지 않다. 효율을 따지면서 살다 보니 후회할 일도 없지만 크게 기쁜 일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 최고의 효율이 아니면 불편해진 것이다. 당연히 최소의 거리로 길을 찾아야 하고, 가성비가 최고인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좋다는 감정은 주관적인 건데 어느 순간부터 효율성이 없으면 불편해져 버린 것이다.
효율성은 사소함의 기쁨을 잊게 만들었다. 매번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시간은 더 걸리고 수고로움도 크지만 익숙하지 않는 광경과 고단함이 주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 숨겨진 개인 카페, 보지 못했던 작은 공원, 내가 배달 시켰던 음식점 등. 그렇다고 그것들이 크게 심적인 감흥을 주거나 소스라치게 놀라운 경험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하지만 익숙함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새로운 광경을 보고 체험하며 효율성이 만든 획일화된 여정을 틀어 보는데 의의가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분명 여행은 효율성과 거리가 멀다. 효율성을 챙겨가며 살면서 아이러니하게 가장 비효율적인 여행을 계획하며 살고 있는 건 분명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