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람회
이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문학동아리 선배가 노래방에서 멋들어지게 부르는 모습이다. 키는 작고 외모도 볼품없었지만 마이크만 잡으면 그는 주인공이 되었다. 저음도 고음도 완벽했던 그 형이 즐겨 부르던 노래. 나도 그 형처럼 부르기 위해 목소리도 내리 깔고 톤도 따라서 불렀던 내 20살의 모습. 지금은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내 목소리로 노래를 하지만, 당시엔 내 목소리가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허영심과 시샘이 가득한 부산촌놈이었고, 서울이라는 환경을 적응하지 못했다. 적응을 못한 거지 실패한 건 아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그 시간이 함께 해준 거니까.
그 형덕분에 전람회라는 가수를 알게 되었고, 노래방을 갈 때마다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이 좋았다. 그보다 노래를 잘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기억의 습작이라는 노래가 날 20살로 되돌린다. 지하의 쿰쿰하던 그 노래방에선 웰치스를 매번 마시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노래를 불렀던 내가 앉아있다. 심리치료에선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거나 수용하는 법을 사용하기도 한단다. 나는 어떨까? 과거의 나를 수용하고 극복한 걸까? 지금도 한 번씩 내가 했던 실수들이 떠오를 만큼 자격지심이 가득한 나지만, 그때처럼 살고 있진 않으니까. 과거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지만 2004년의 내가 종종 그립긴 하다.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그만큼 소중했던 순간이다. 사회의 때가 묻지 않고, 책으로 내 정신이 더럽혀지지 않았던 깨끗한 뇌를 가졌던 그 시절.
읽지도 못하는 박상륭의 소설책을 잡고 졸고 읽고를 반복하고 칸트의 비판서를 이해도 못하면서 다 읽었다며 자랑하던 나. 이문열의 책을 읽고 젊은 날의 초상을 필사하고 있던 나를 보며 황석영의 책을 읽어 보라고 권유하던 형들. 형들을 따라 집회를 따라가고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을 갔었던 그 순간들. 난 그 순간이 그립고 소중하다. 나랑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함께하며 배운 것이 많았다. 고마운 사람들.
노래로 돌아와서, 가사는 투박하고 일인층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좋다. 1994년에 발매된 노래는 어느덧 30년이 지나버린 예전노래가 되었다. 1994년의 노래를 2004년에 처음 알고 들었다. 그리고 2025년 지금 까지 듣고 있다.
기억의 습작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나에게 말해 봐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너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나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