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신문은 강제로 보고 있고 책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지지부진하게 읽어 넘길 뿐이다. 일과 육아라는 큰 틀에서 운동이 추가된 이후로 글쓰기를 등한시했다. 사이에 넣을 수 있지만 기력 보충이니 휴식이니 하며 멀리 한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해서 나에게 큰 변화는 없으며, 내 글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지도 않았으니까. 내시경 관련 글들은 질문이나 문의가 있어서 더 열심히 써봐야 하나 싶다. 글을 쓰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가 된다면 그것만큼 완벽한 것은 없다.
세상엔 완벽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 나는 지금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위해 저녁을 준비해 주는 아내와 퇴근 후에 달려오며 아빠를 맞이하는 두 아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가족이지만, 그 고마움의 감정이 예전과는 다르다. 퇴근 후에 이야기하는 두 아들과 아내를 보고 있으면 책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 가정을 지키고 책임지기 위해선 두 손을 다시 쥐어야 한다. 이 땅의 가장들의 마음이 이러하겠지? 일을 마치고 오면서 치킨을 사 오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 만 같다. 치킨 봉지를 집어드는 우리 두 형제를 보며 위안을 삼고 힘을 내셨을 테니까. 부모님의 얼굴 속 주름의 지분은 내가 가장 많지 않을까?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피드백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단순히 있었던 일들과 그날 느꼈던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일기에 피드백을 기대했었다. 내 이야기를 쓰면서 남의 반응을 의식하다 보니 글도 쓰지 않게 되었다. 이곳은 나에게 일기장 같은 공간이다. 시간이 녹아들어 있는 이 공간에서 이전처럼 매일을 쓰고 이야기하고 사부작 거려야지. 내 치부를 드러내고 싶진 않지만, 그날 느꼈던 감정 정도는 다시 써나갈 생각이다.
일상이 행복이고 지금 누리는 이곳이 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철학적 사유가 자기 합리화를 향해 가는 것 같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술자리에서 개똥철학을 읊어대는 술 취한 꼰대가 될 거다. 그전에 그간 느낀 감정과 생각을 다시 적어야겠다. 예전처럼 정치이야기도 하고 내시경 이야기도 해야지. 물론 우리 가족이야기를 가장 많이 할 것이다. 나를 나로 지탱해 주는 것은 가족이니까. 다시 시작하는 의미로 나에게 파이팅 해야지.
박경국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