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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by 돌돌이

부산에서 인천 송도까지. 기차를 탈 일이 생긴 것이다. 직장 동료들과 동행하는 워크숍 일정이지만, 기차에서 책을 읽을 생각에 설레었다. 책장에 꽂혀 있지만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책을 손에 쥐었다. 가방 안에 넣어두니 아내가 한마디 한다.


[오빠, 놀러 가서 책 안 읽잖아.]

[나 놀러 가는 거 아니거든. 그리고 기차 안에서는 읽지 않을까?]

[무조건 잔다에 한표.]


기차가 출발하는 동시에 책을 폈다. 그리고 5분 만에 책을 내려놓고 한 시간을 내리 잤다. 아내는 완벽하게 맞춘 것이다. 옆자리의 직장동료는 잠을 자기 위해 책을 편 게 아니냐며 놀리기도 했다. 잠이 깨고 나서 개운한(?) 기분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햄릿을 읽었는데 내가 알던 내용과 다른 느낌이었다. 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세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전체 줄거리는 꿰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맛깔난 문장들은 다시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어렸을 적 읽었던 햄릿은 지금과는 달랐다. 단순히 번역의 문제라기 보단, 어른이 되어 머리가 굳어 버린 내가 읽는 햄릿은 20살의 내가 읽던 것과는 다른 것일까?



이 책을 언제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출간 연도는 1995년이었다. 30년 전에 나온 이 책은 주인을 기다리며 책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을 것이다. 본가에서 들고 온 이 책은 1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 기차를

타기에 볼 생각을 한 것이다. 요즘 책들에 비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디게 넘어가는 페이지는 내용의 어려움과 문체 탓 일수 있겠지만, 수록된 양의 방대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간도 행간도 좁아서 한 페이지에 수록된 글자수가 상당하다. 요즘 책들 중엔 일러스트 하나에 글 한 문장으로 두 페이지를 채우는 책들도 있다. 그리고 글자들의 크기도 커서 몇 번 눈이 지나가면 페이지를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책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문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중얼거리다 보면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햄릿은 희곡이라는 읽기 쉬운(?) 형식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진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4대 비극으로 인정받는 첫 작품이 바로 햄릿이다. 이후에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가 나왔지만 그 첫 시작이 중요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유명한 작품은 문학적인 성취보다는 대중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나 또한 올리비아 핫세로 줄리엣을 처음 영접했었으니.


부산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결국 햄릿을 다 읽지 못하고 졸아버렸다. 수면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나를 재워버린 햄릿. 끝은 봐야 하지만 오징어 게임 시즌3을 봐야 하기에 잠시 덮어두련다.


p.s - 20대 때는 놀거리가 없어서 책을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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