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접 접촉자가 된 나

by 돌돌이

코로나 밀접 접촉자가 되고 나서의 삶은 폐인 그 자체다. 임신한 와이프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하고 있고 화장실을 제외하곤 내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사식 넣어 주듯이 넣어주는 와이프의 식단은 고칼로리 고단백의 3끼 식단에 식간 간식까지 챙겨 주기 때문에 자가격리 4일째인 지금, 셀카를 찍기 싫은 얼굴이다. 살찐 볼에 기름 낀 얼굴, 동그란 턱 선은 미쉐린 타이어 같다. 느낌상의 느낌인지 괜히 몸도 춥고 으슬거리는 것 같아서 열을 측정을 해보면 정상체온이며,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볼 때는 어떠한 불편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흔히 7일 전후이고 나는 임산부와 거주하기 때문에 14일간은 절대로 내방에서 나올 수 없다. 매일 두 번 앱에 이상 유무를 기입하고 나면 내가 할 일은 끝이다.


마냥 폐인처럼 3일을 보내고 나니, 내가 해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미뤘던 글들을 차곡차곡 쓸 수 있고, 당근 마켓에서 구입한 수많은 책들을 읽으면 된다. 난 벌써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노예가 돼버려서 독서를 하고 사색을 하는 습관을 잃어버렸다. 취미 = 독서라고 외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유튜브를 보며 낄낄 거리는 게 취미가 돼버렸다. 3일간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ERCP ROOM에서 번아웃 되듯이 소모되었던 내 일상에 활기를 찾는가 싶다. 집 밖을 나가서 산책도 하고 헬스장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반강제적으로 내방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시간 운용을 해야 한다.


나에게 남은 건 10일. 고생하고 있는 내시경실 식구들에겐 미안하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난 내 시간을 꾸려 나가야 한다. 끊었던 독서를 다시 하고 쓰다만 글들을 써야지. 자소서를 첨삭해 주고 면접 준비를 도와주는 일도 할 수 있다. 오직이라는 사이트에서 간호사 직무와 취업과 관련한 협업 메일이 왔었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뭘 해도 할 수 있으니 좋다. 그리고 쓰다만 글을 이어 쓸 수 있고 먼지가 쌓인 기타를 다시 잡을 수 있다. 유튜브와 게임과 넷플릭스는 내 모든 행동과 패턴을 바꿔 놓았기 때문에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릴 거다. 열흘 이면 충분히 습관을 바꿀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밀접 접촉자가 되고 나서 카카오톡 답변을 빨리하게 된다. 무조건 실시간으로 해버리니까 상대가 놀란다. 시간도 남았고 폰을 마냥 쥐고 있으니 당연한 결관데, 그게 신기 한가보다. 그거와는 별개로 상대의 답변이 늦게 오면 내심 초조해지고 폰을 들여다보며 연락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 이것이 시간이 널찍한 사람의 목마름인가. 짝사랑하는 사람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난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단체 카톡이나 시답잖은 내용은 그냥 흘려보내기 마련인데, 지금은 다르다. 꼼꼼히 읽고 알찬 답변으로 상대를 곤혹 시킨다. 녀석들에겐 단순한 농담 따먹기일지라도 3평 방안의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정보와 소식 보다 연락이 더 소중하다. 감옥도 바깥 산책은 하게 해주잖아. 하지만 코로나 밀접접촉자에게 바깥이란? 그림의 떡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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