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에 걸렸다.

by 돌돌이

장염에 걸렸다. 처음엔 점심때 먹은 갈비탕이 체해서 밤에 토를 하고 이후에 춥고 으슬거리는 근육통을 동반한 몸살이라 생각했다. 다음날에도 동일하게 온몸에 힘이 없고 뒤늦게 설사를 하는 걸 보고 전날 먹었던 조개 샤부샤부를 의심할 수 있었다. 와이프가 만들어준 죽을 두 끼에 걸쳐서 먹었는데, 체한 거라는 생각에 베아제와 가스활명수를 들이키며 주말 하루를 누워서 보냈는데 정말 미련한 짓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뒤집어지는 걸 경험하는 순간부터 포카리 스웨트만 먹고 금식을 하기 시작했다. 출근을 해서 오전 근무만 끝내고 수액을 1L 맞으며 누워서 쉬다가, 반휴를 써 집에서 동일하게 수액을 1L 맞으며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전날 아파서 끙끙 되며 밤새 뒤척인 탓에 수액을 맞을 때도 깨지 않고 3시간 정도 잤고, 이후에 다시 또 잠을 잤으니 신생아처럼 잠만 잔 꼴이다. 수액을 맞고 일어나려는 순간, 목덜미가 뻐근하며 두통이 심해서 머리를 들기가 힘들었다. 꽤 오랜 시간 통증과 불편감을 느끼면서 나 자신과 싸울 무렵, 와이프도 동일하게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살이 빠져서 예전만큼 통통하진 않지만, 탱글탱글한 볼에 침을 가득 묻혀서 뽀뽀하는 재미로 사는 나였다. 그런 내가 장염 전파자의 역할을 했을 거라 생각하니 ...... 역시나 우리 와이프도 내가 앓고 나서 다음날 동일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보다 더 크게 앓기 시작했다. 나와는 다르게 뱃속에 기쁨이가 있는 산모였기 때문에 그녀는 내가 말한 금식과 수액치료에 대한 이야기보단 진료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있는 병원보다는 본인이 가고 있는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보러 갔다.


설사가 자궁수축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출산 검사를 시행하고 수액을 1L 맞기로 한 것이다. 먹는 약도 받았는데 그걸 먹고 나서는 설사가 없단다. 나는 설사를 딱 한 번 했지만, 와이프는 6번이 넘는 설사를 겪으며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에겐 동일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죽을 먹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내가 24시간 이상 금식하라고 말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우습게도 지사제를 먹고도 설사가 계속되면 가까운 내과를 찾아가라는 설명을 덧붙였단다. 남편이 일하는 곳이 대학병원이고 같이 일하는 교수님들이 소화기 내과, 간 내과 교수님들인데 내가 동일한 수액을 놔주고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크게 수긍하지 않았다. 남편보단 담당 의사와의 신뢰도가 높아서 일까? 지사제의 효과가 그 믿음을 확고히 했던 걸까? 아니면 시간이 더 지나서 호전되는 양상이어서 그랬을까? 이유야 어쨌든 와이프의 믿음의 강도는 달랐다. 아픈 건 둘째고 서러움이 첫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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