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곳은 어떤 곳일까? 확실히 대상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가진 부와 명예도 상대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하게 질병도 특히 정신적인 질환도 상대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일전에 헬조선, 불지옥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지난 과거 몇 년과 비교해 봐서 느낀 바를 적은 것이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풍족하진 않아도 미래엔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노력해서 저축하면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 노력하면 더 나은 자리와 처우가 주어질 거라는 믿음. 지금은 그러한 믿음은 사라져 버렸다. 내가 노력하고 가치를 인정받아도 시스템은 내가 쓰임이 다하면 버릴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직업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다. 정리해고가 없는 공무원이 인기가 있는 것도, 공기업의 안정성이 최고라는 것도 그러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거다. 투잡 홍보나 블로그 글 올리기 같은 알바는 지금 생업으로는 먹고살기는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 거라는 두려움에서 오는 거다.
이러한 믿음이 사라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던 가치관이 붕괴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능 연기다. 수능이 시작한 이래로 처음으로 2018년 수능이 일주일 연기가 된 것이다. 전날의 지진으로 인해 시험장의 붕괴 위험이 있어서라는 이유였다. 과거 대학입학학력고사 시절에는 문제지 유출로 인해 연기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2021년 수능은 코로나로 인해 연기가 됐다. 이건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지만, 이어령 교수는 과거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도시락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빨리 먹어야지 공 한 번 더 찰 수 있다는 그 생각. 이러한 그의 생각은 분명 오류가 있지만 난 공감했다. 농구를 하기 위해 밥을 빨리 먹고 뛰어갔던 기억이 나니까. 빨리 먹은 만큼 남은 점심시간을 내가 원하는 자유 시간으로 쓸 수 있었으니까. 애초에 학교는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고, 그 억압된 자유를 같이 경험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더 재밌을 수밖에. 룰이 있어서 축구가 더 재밌고 제한된 시간이 있어서, 점심시간에 하는 축구가 더 재밌는 법이다.
11월 셋째 주 수요일, 현재는 목요일로 바뀌었지만 그날은 수능일로 못 박힌 날이었다. 절대적이었다. 대학은 미래를 결정짓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을 결정하는 것은 수능날. 수능날은 차량 운행도 줄고, 회사는 늦은 출근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수능이 가진 절대적인 신념은 이러한 불합리라 여길 수 있는 것도 가능하게 한 것이다. 포항에 지진이라는 천재 지변이 있었던 2017년, 수능 연기는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괜히 오바 한 것일 수 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믿음과 신념에 대한 가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고작 수능을 일주일 바꾸는 게 그만큼의 의미가 있겠냐며 되물을 수 있지만, 수능이 생겼던 이래로 수능이 일주일 미뤄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미뤄진 학기로 2021년 수능은 12월에 실시되었다.
절대적인 믿음에 대한 붕괴. 수능날이 무슨 절대적인 믿음과 가치관이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 대학 입학을 결정짓는 날이 바뀐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과거 학력고사 시절의 경우 형평성의 문제로 연기된 것이다. 문제지가 유출되어서 공평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시작하지 못했으므로 날짜를 연기 한 것이다. 천재지변이라곤 하지만, 이러한 날짜의 연기는 절대적인 신념과 믿음은 항시 붕괴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날짜가 바뀐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수능날의 변화 전과 변화 후의 사회는 완전히 달라졌을거다. 절대적으로 믿던 가치관이 바뀌어서다. 수시와 로스쿨, 의전원이 정말로 기회의 평등을 가져다주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수능이 공평하다고 믿는 게 나뿐인가? 정말로 이러한 전형들의 탄생이 우리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