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27살에 결혼을 해서 28살에 기쁨이를 낳았다. 우리나라 평균 산모의 나이가 33살이니까 꽤 빠른 편이고 아내의 친구들 중에서도 아기를 가진 친구는 한 명 밖에 없었다. 어린 신부 까진 아니지만, 나이가 무색하게 엄마의 노릇을 똑똑히 하고 있고 육아의 주도권은 철저히 아내가 가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간단한 잡무와 정리 수준이고, 기쁨이를 직접적으로 케어하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내가 도움을 줘도 꼭 아내의 손으로 마무리를 해야 일이 정리가 된다.
아이가 나오고 나서 우리의 대화는 철저히 기쁨이에게 맞춰져 있다. 어떻게 우는지, 언제 방긋 웃었는지, 분유는 얼마나 먹었고 똥은 얼마나 잘 쌌는지 등. 우리 대화의 99.9퍼센트는 기쁨이가 주제이다. 아내가 했던 말 중 기억나는 것은 머리가 요즘 많이 빠진다, 살이 쪄서 배가 나오는 거 같다 이런류의 푸념 정도이다. 생각해 보면 매 순간 아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거다. 내 귀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을 것이고, 그것은 온전히 기쁨이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했던 대화의 가장 큰 주제는 기쁨이는 왜 낮에 자고 밤에 자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브런치 프로필에 내 소개는 꿈꾸는 소년, 남편, 아빠, 아들, 내시경실 간호사라고 적었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에 꿈꾸는 소년을 우선순위로 적었고 그다음 기준은 남편이고 아빠이고 아들이다. 직업적 측면은 마지막이다. 꿈꾸는 소년이라는 맥락은 내 존재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수정되거나 고칠 수 없는 관념 같은 거다. 나를 나타내는 수식어 '남편'. 남편은 아내가 존재해야 하고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합의를 이뤄야만이 가질 수 있는 지위이다. 내 소개에서 가장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고 내 직책의 첫 번째이다. 아들은 태초에 얻게 된 타이틀이고, 아빠도 결혼 후에 남편이 되어 기쁨이를 가져서 생긴 직책이다. 내가 기술한 역할들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내 삶에 이러한 직책을 선사한 아내에게 몇 점짜리 남편인 걸까?
흔히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곤 하는데,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없다. 물론 서로를 위한 마음과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겸양의 미덕이라 하면 할 말 없지만 함께 24시간을 얼굴 맞대고 살고 있는데 부드러운 말 한마디와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최소한 해야 할 그날의 의무 같은 거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내 아내가 돼줘서, 우리 기쁨이의 엄마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매일 아내에게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출산 후 육아의 매운맛을 보면서 매일 하던 저 멘트가 쏙 들어가 버렸다. 사실 기쁨이를 핑계로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나 사유는 핑계일 뿐이다. 기쁨이 핑계를 대면서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던 아내를 인간계의 한 측면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밤새 칭얼거리는 기쁨이를 돌보면서 오전에 서로 교대로 졸다가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스러움을 이전처럼 표현하긴 쉽지 않다. 약 한 달간의 공백기가 있었기에 그 말을 끄집어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있을 순 없다.
[내 아내가 돼줘서 고맙고, 우리 기쁨이의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우리 둘째의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라고 하면 쌍욕 먹겠지? 오케이 이건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