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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몰랐던, 가난의 속성
배고픔보다 부끄러움
by
그랑바쌈
Dec 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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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으로)가난해도 마음은 부자일 수 있다.
낭만적인 얘기지만, 현실적이진 않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면 마음도 가난할 가능성이 크다.
마음의 가난은 결국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주관적으로 인식하면서 싹트는 것이다.
얼굴이 객관적으로 못생긴 사람이 자신 스스로 못생김을 인정할 때와 같이.
외부세계와 교류가 없는 아프리카 오지 부족사회의 아무개는
자신이 객관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주관적으로 알지 못한 채 풍족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경로는 <비교>다.
나와 비교대상이 확정되는 순간, 주관적 가난의 크기가 정해진다.
빌게이츠가 아무리 부자라해도 그와 비교해 마음이 가난해지진 않는 이유다.
내가 근무했던 코트디부아르 AfDB 본부에 시골마을 현지 학생들을 초대한 적이 있다.
객관적으로 모두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다.
12명이 오기로 했는데, 1명이 빠진 11명이 도착했다.
프로그램을 주관했던 선교사님이 살짝 귀띔해주었다.
"입고 올 옷이 없었대요"
정확히는 견학에 걸치고 나오기엔 부끄러운 옷들 뿐이었을게다.
고만고만한 가난들 속에도 상대적인 가난은 존재한다.
아무 옷이나 거리낌없이 걸치고 나와 도시 나들이를 즐겼다면
마음이 가난한 처지는 면했겠지만.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같은 반 오십여명 학생중에서 유일하게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던 아이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이었다.
견디기 어려웠던 건 배고픔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다.
친구들이 도시락을 비우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갈 때까지의 15분은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도시락을 못싸온 것이 죄도 아닌데, 그렇게 수치스러웠다.
학교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가, 상황이 종료되면 모습을 나타냈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배고픔은 희미하지만, 부끄러움은 오랫동안 진하게 남았다. 못생긴 흉터처럼.
정치적 편향이 없던 내가 '무상급식' 논쟁에서만큼은 극진보를 자처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 나는 by grace
객관적인 부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물질적인 이유로 마음의 가난에 빠지지는 않는다.
(일주일 된 초보 작가로, 구독자가 많은 브런치 작가를 보면 마음이 가난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TT)
Again by grace 마음의 가난이 남긴 흉터는 훈장이 되어,
원조를 받는 처지에서 원조를 주는 선진국으로 탈바꿈한 유일무이한
나라의 공무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 원조를 공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따금씩 우리의 원조가 또는 공여국 공무원인 나의 행동이 원조를 받는 나라에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안기지는 않았는지 되짚어본다.
배고픔보다 부끄러움이라는 가난의 속성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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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바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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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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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친구같은 아빠의 행복한 글쓰기. 인생의 쓴맛 단맛을 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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