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작가적 글쓰기의 경계에 서서

울림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직업공무원의 처절한 몸부림

by 그랑바쌈

공무원은 글을 쓰는 직업 중의 하나다.

각종 정책보고서, 회의자료, 보도자료..

다 글로 된 것들이다. 종일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나의 일과다.

글욕심이 있는 사람 입장에서 글을 쓰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좋겠다싶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공무원의 글쓰기는 내 작가지망적 글쓰기에 종종 방해가 된다.


공무원의 글쓰기는 논리적 글쓰기다. 결론을 도출하는 기승전결을 갖추는 게 핵심이다.

목차는 대체로 <추진배경-현황 및 분석-추진전략-세부실행계획> 이런 식이다.

그나마, 내가 속한 곳은 정책을 기획하는 기관이라 작가적 상상력도 조금은 필요하다.

종일 이런 글을 읽고 쓰다보면, 작가적 글쓰기로 모드를 전환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주말에 에세이를 쓰노라면 어느새 공무원스런 문체가 스믈스믈 기어나온다. 반대로, 내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공무원 사전에는 없는 괴상한 단어와 표현이 등장해 상사를 당황시킬 때가 있다. 장관연설문이나 신문기고 초안처럼 상대적으로 유연한 글을 작성할 때면 보고서를 쓸 때와는 달리 능력이 발휘된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기피하는 업무다. '아프리카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가난'이라는 책을 쓸 때도 이 두 개의 정체성은 서로에게 걸리적거렸다. 개발협력 분야 경제서적이지만 쓰다가 감성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 힘들었다. 그 흔적은 책 곳곳에 남아있다.


공무원 글쓰기를 15년쯤 해온 나는, 남은 15년을 똑같은 글쓰기를 반복하다가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은퇴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중간지점 터닝포인트에 와 있는 지금, 더 이상 가속도를 붙이지 않고 언제든 태세전환을 할 수 있는 유연함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선배공무원들이 비석에 새겨도 손색이 없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은퇴한 후 '내가 한 때 이렇게 대단했지' 외 아무런 내용도 없는 불쌍한 회고록을 출간하는 클리셰를 나는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이지 기필고 피하고 싶은 운명이다.


나는 울림있는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어 좋은 글의 요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통찰과 울림있는 글을 보면 그리 좋았다. 대체 울림이 있는 글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게 "울림이 있으니 울림이 있다고 하는데 왜 울림이 있냐고 물으시면 울림이 있는 걸 어찌합니까?"로 대답할 수밖에.

이게 좋았더라, 저게 싫었더라 하는 깃털처럼 가벼운 자랑이나 푸념 말고,

"아! 그거였지"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인생의 깨달음을 주는 글. 빗발치는 포탄, 낭자한 피가 없이도 전쟁의 참혹함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글. 그림같은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글쓴이의 떨리는 감정이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울림있는 글을 쓰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무릇 모든 재주는 상대적인 것이라, 내가 속한 직업공무원의 세계에서는 아주 조금 특별하다. 그러나, 문학계는 고사하고 아마추어 브런치 작가의 세계에서도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내가 애독하는 '지평선' 님의 글을 읽다보면 한없는 좌절에 빠진다. 당장 공무원을 때려치고 전문 글쓰기 훈련을 받는다해도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비판한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는 대학시절 철학자 김영민('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저자)의 책에 푹 빠졌고,

암호처럼 어렵게 쓰여진 그의 글이 불편했지만 그게 정도(正道)라고 생각했다. 정도는 항상 어려우니까. 그의 책을 대여섯권쯤 지나갈 무렵 나는 기권을 선언했다. 온갖 고전과 철학적 사유를 끌어다가 만든 난해한 문장에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읽을 수 있다면 읽어보든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려운 책에 대한 동경과 그걸 사수하지 못한 죄책감이 꽤 오래토록 찜찜하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만난 책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다.

권위있는 유시민 작가가 '글은 쉽게 써야 한다' 라고 확신있게 얘기해주니, 한결 자유로워졌다.

'이제부턴 당당하게 쉽게쓰자'

쉽게 쓰니 글은 더 잘 써졌고, 읽기도 편해 사람들도 좋아했다.

그래도 왠지모를 찜찜함은 남았다. 글쓰기에 발전이 없다는 느낌. 철학, 신화, 고전 한줄이 늘 아쉬웠다.


지평선님이 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를 비평(?)한 글을 보고 나는 동지를 만난 듯했다.

누가 돈 벌었다고 배 아픈 게 아니라 이런 울림 없는 글이 백만부씩 팔려나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씁쓸했다. 경제부처에 근무하는 나로서는, 제대로 된 경제서적은 인정받지 못하고 '꾼'들이 제멋대로 써제낀 얄팍한 주식투자 책들이 경제도서 매대를 점령하고 있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인문교양 분야에서도 이런 얄팍한 시류가 지배하고 있나보다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글쟁이'라고 소개한다.

'글쟁이'는 작가를 낮춰부르는 말 같지만 내가 느끼는 어감은 그 반대다. 음반을 내면 가수가 되고, 책을 내면 작가가 되는 세상이지만, 글쟁이는 글을 닳도록 쓰고 글이 다른 글쟁이들에게 인정받고 그 글로 먹고 살 정도가 되는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극존칭이라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글을 아무나 쓰고 공유할 수는 있지만 자신을 글쟁이로 소개하는 건 박완서님 정도는 되야 어색하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지금 경계에 서있다.

공무원의 글쓰기와 작가적 글쓰기, 논리적인 글쓰기와 울림있는 글쓰기, 쉽고 가벼운 글쓰기와 어렵고 무거운 글쓰기. 사실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글쓰기의 고수는 경계를 넘나드니까. 논문이든 에세이든 잘 쓰는 사람은 다 잘 쓴다. 더 나아가 두 경계를 허무는 이른바 '융합형 글쓰기'에도 능하다. 논리에 빈틈이 없이 울림도 꽉 찬 글, 쉽게 쓰여있지만 다시 보면 한없이 어렵고 무거운 글.


공무원을 은퇴할 즈음에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경계에 선 글쟁이지망생의 원대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