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

코로나19 백신이 알려주는 신체나이

by 그랑바쌈

아스트라제네카.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수많은 여인들 중에 하나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이름이다. 이 러시아틱한 이름의 백신은 오리지널 영국산이다. 하겐다즈라는 아이스크림이 독일산이 아니라 미국산이란 걸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은데, 하겐다즈가 그렇듯 아스트라제네카도 그런 이국적인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즘 부작용으로 말 많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나도 접종했다. 갑자기 잡힌 해외출장 때문에 강제 접종대상이 됐다. 이 백신은 젊은 연령에 간혹 나타나는 혈전 부작용으로 인해 30대 미만은 접종이 제한된다. 15년의 넉넉한 나이차가 있으니 딱히 걱정할 이유가 없었지만 왠지 불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불안은 양쪽으로 열린 불안이었다.

- 부작용이 심각하면 어쩌지?

- 부작용이 별로 없으면 어쩌지?

젊을수록 접종 후 반응이 격렬하다고 알려져 있다. 부작용이 없을수록 신체나이가 늙었다는 얘기다.

(물론 예외는 항상 있다) 이 주사를 맞고 몸이 심하게 아프지 않으면 나이 탓 아니 덕이라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

마흔 중반에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참 민망하다.

부모가 되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주변엔 두 사건을 겪지 않고도 어른다운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모든 조건을 충족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어른이 되는 게 너무 어색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손자가 생기면 좀 어른 같을까..

언젠가 30대 초반의 청년에게 "더 이상 내가 청년이 아닌 것 같아 서글프다"라고 했더니 뼈를 때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요?" 그 당연한 걸 이제 깨달았냐는 얘기다.

'너도 20대 한테는 꼰대 아저씨란다' 하고 반격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바쁘게 살다보면 나이듦을 느낄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중학생이 된 딸을 두고 무슨 망언이냐고 하겠지만, 내 눈에는 아직 키 큰 살일 뿐이다. 회사 동료들도 친구들도 같이 늙어가니 상대적인 나이는 변함이 없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대부분 그렇듯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 나이를 굳이 세지 않는다. 연장자 예우가 필요한 순간에나 끄집어내는 게 나이다.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는 것 자체는 별로 자랑할 게 못된다. 노력 없이 가만히 있어도 먹는 게 나이니까. 나이만 먹고 후레자식으로 남는 것 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다. 그래서 다들 나이를 모른 채 잊은 채 살아간다.


그러다가 한 번씩 "너 몇살이야" 하며 나이를 꼬집어 알려주는 순간들이 찾아 오는데, 내겐 치과 시술을 받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진료 의자에 앉으면 45도 각도 위 모니터에 차트가 뜬다. 45세 남 XXX. 7년쯤 된 단골 치과다. 저 차트에 30대 후반의 나이가 찍혔던 때가 있었다. 바로 엊그제 일이다. 희한하게 치과를 찾을 때마다 한두 살이 보태진다. 의사가 입만 뚫린 가림천으로 얼굴을 덮을 때 비로소 평안이 찾아오는 건 저 고약한 차트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나는 오한으로 몇차례 잠에서 깼다. 간간히 짧은 근육통이 찾아왔고 미열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벼운 감기몸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프긴 했지만, 어느 30대 접종 후기에서와 같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격렬한 통증'은 아니었다. 그간 내 몸이 경험한 통증의 역사를 부정할 수 없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첫사랑의 이별이 남긴 가슴 시리고 뼈를 깎는 고통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간호사의 경고에 미리 사다놓은 타이레놀은 필요가 없었다. 마담 아스트라제네카가 알려준 대로 나는 아니 내 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른이었다.


~스트라제네카여, 좀 더 치명적일 수는 없었나..나에게.


p.s. 몸처럼 마음도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