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으로부터의 분리

나의 인생을 준비하는 첫걸음

by 그랑바쌈

그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는 지인 소개로 알게 된 까페 사장이다. 올해 초에 30년간 출근한 회사에서 정년퇴직했다.)


그는 10년 전에 이미 계룡산 자락에 땅을 사서 건물을 지었다. 1층엔 갤러리를 만들고 2층은 까페로 꾸몄다.

아내 명의로 일찌감치 까페를 시작했고,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오른 상태에서 퇴직을 맞이했다. 재직 중 틈틈이 익힌 사진 기술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세계 일주 출사 계획도 세웠다(코로나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지만)

모든 직장인의 로망을 이룬 것처럼 보인 그 역시 쉽지 않았다고 했다. 출근하지 않는 하루가 그렇게 낯설고 어색했다고.

"직장에서 자신을 되도록 빨리 분리해야 합니다"

난 나만의 비밀 프로젝트가 탄로 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아프리카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부로 복귀하면서 내가 세운 계획이 바로 '직장으로부터의 분리'다.


<직장의 세계> 드라마를 찍은 지 17년째다. 이제 중간 회차를 지났다. 모두가 가속페달을 밟는다. 고지를 눈앞에 둔 돌격대처럼. 관리자의 영역으로 입성하느냐 마느냐, 어떤 포지션의 관리자로 가느냐가 다가올 경조사 화환의 개수를 결정한다. 성공하면 개인 비서가 있는 독방을 차지하고 출장때 비즈니스석을 한 몇 년 타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다가 도둑처럼 그날이 오면 "평생을 몸과 마음 바쳐 일한 조직을 떠나는 저의 심정이 어쩌구.." 베낀 것 같은 상투적인 퇴직인사를 전 직원 수신으로 발송.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다음날 아침, 출근할 회사도 없고, 비서도 전용차도, 아부하는 직원들도 보이지 않게 되면 그제야 어김없이 현타가 온다.


실은 '그' 없이도 잘만 돌아갔을 조직이었다. 퇴직이란 당사자에겐 대단한 사건이지만 조직엔 매일 사내 공지에 뜨는 발령소식 한 줄 이상 이하도 아니다. 승진 티오 한자리 나왔으니 누군가에겐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겠다. 은퇴 후를 대비하라는 충고는 늘 있어왔지만 퇴직 직전까지 조직의 인정과 승진에 목매는 직장인들이 아직은 절대다수다.


나는 요즘 내가 속한 직장에서 나를 분리해내는 일을 시작했다. 사표를 낸 것은 아니니 정확히 말하자면 심리적 정서적 분리다. 백 년을 사신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지혜와 경륜이 절정에 다다르는 때를 60세라고 했다. 50세도 아직 철이 없는 나이란다. 진가가 나오는 60세에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본격 일할 수 있도록 심신을 잘 준비하라고 충고하신다.


직장생활은 퇴직 시점에 '나'라는 브랜드를 완성시키기 위한 훈련기간이지 그 속에서의 성공이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직장에서 나를 분리시켜야 나를 객관화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직장이 전부이고 그 속에서 성공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분리주의 선언이 탐탁지 않다.(공개적인 선언이 없어도 알아차린다. 저 놈은 좀 다르다는 걸) 분리주의자는 직장 내 성공에 별 욕심이 없기에 상급자 눈에 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먼저 승진하려고, 선호 부서 가려고 안달이 나야 이걸 미끼로 쉽게 통제할 수 있는데 말이다. 직장이 전부인 이에겐 점심시간 도시락 싸와서 책을 읽는 후배는 왠지 밥맛 없다. "오늘은 뭐 드실까요? 헤헤"하며 앵겨붙는 후배와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직장토크로 점심시간을 가득 채워야 잘 나가는 '인싸' 직장인이다.


좀 아쉬운 건 이삼십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90년대생이 온다'라고 하도 떠들어 대서 대단한 혁신의 바람이 불 줄 알았는데.. 이들 역시 직장에 발을 딛는 순간 회사가 정해놓은 커리어의 컨베이어 벨트에 재빨리 올라타는 걸 보면 좀 씁쓸하다. 입사 순서, 직급, 조직의 위상, 거래처와의 갑을관계 등 기성 직장인의 문법에 자연스럽게 젖어든다. 기껏 특징이라고 해봐야 '웰빙 선호' '프라이버시' '잰더 감수성'? 그런 가치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아이폰을 쓰고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는 그들에게 난 좀 더 '잡스'스러운 뭔가를 기대했다. 스티브 잡스가 웰빙을 쫒아 대학교를 중퇴한 것은 아닐 텐데..


분리주의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그에 걸맞은 편견을 만들어낸다. 직장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분리주의자를 무능력자와 한통속으로 그룹 지어버린다. 사실 제대로 된 분리주의자라면 맡겨진 일에 대해 더욱 오너십을 가진다. 승진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인생을 완성시키는 훈련의 일부니까. 조직이 주는 후광과 거품을 걷어내고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영업자의 마인드로 일을 대하게 되니 일의 완성도는 올라간다. 어찌 됐든 결론은, 분리주의자는 일을 잘하든 못하든 직장에선 아니 직장이 전부인 직장주의자들 사이에선 '별의별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분리주의를 관계성의 문제로 연결짓는 편견이다. 직급을 앞세운 절대적 복종관계를 배격한다고 해서 이를 관계성의 결여로 몰고가는 건 온당치 않다. 상사가 '팀장 부장'이란 직함을 떼고도 인품이나 역량면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존경과 예우는 마땅히 그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세울 게 입사 순서와 직함밖에 없다면, 한 술 더 떠서, 사석에선 1초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저열한 인격의 소유자라면 그에 대한 예우는 결재선에서 그의 이름을 내 이름 위에 놓는 것 외에는 허락될 수 없다. 반대로 직급이 낮아도 나보다 인생의 완성도가 높은 후배는 존경과 배움의 대상이다. 직급과 출신 프레임에서 빠져나와 수평적인 관계로 상대를 대하는 것은 '직장에서 분리'를 실천하는데 필수적인 덕목이다.


직장에서 심리적 정서적으로 분리되면 그 속에서 돌아가는 요지경을 흥미롭게 관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퇴직하고 B기업 사장으로 간 K선배가 그렇게 끝나나 싶더니 글쎄 이번엔 H로펌 고문으로 갔다네. 연봉이 억억.. 캬~ 인생은 그 양반처럼 살아야 돼."

오래전 회식자리에서 술에 잔뜩 취한 상사가 뱉은 말이다. 다들 맞장구다. 만약 그가 말한 K가 자신의 연봉을 자선단체에 몽땅 기부했다던지, 아프리카 오지로 가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던지 그런 스토리였다면 난 부러워 밤잠을 설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고작 그런 직함과 연봉으로 기껏해야 골프 치고 비싼 술 마시는 인생을 몇 년 더 연장하는 게 정말 부러울 일인가? "당신의 아까운 시간을 남의 인생을 사는데 쓰지 말라"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제발 네 인생을 살아라. 쫌!'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뭘 준비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직은 글쎄 올씨다."

찾고 있는 중이다. 60세에 완성될 내 모습을. 지난 6개월간 열심히 써서 책을 한 권 출간했다. 뒤늦게 알게 된 브런치란 곳에 작가 신청도 했다. 일단 계속 써보기로 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시간은 내편이다. 퇴직까진 아직 꽤 남아있으니. 쓰는 내가 아니라면 다른 나도 있겠지.


직장에 속해 있으면서 내 인생을 준비하는 분리주의자의 길은 외로운 길이다. 어차피 퇴직하면 외로워진다. 60세에 당당하게 홀로서기 위해서 난 선택했다. 지금 외로워지기로.


커버사진 by 그랑바쌈(코트디부아르 그랑바쌈 해변에서 말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