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정년퇴직 인사를 전해받으며

by 그랑바쌈

얼마 전 퇴직인사로 이런 시를 하나 전해받았다.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시라고 했다. 노천명의 <별을 쳐다보며>였다.


친구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있어본댔자
명예가 남보다 뛰어나 본댔자
또 미운 놈을 혼내주어 본다는 일
그까지 것이 다아 무엇입니까
술 한 잔만도 못한
대수롭지 않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평소에 좋아했던 시'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나는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고 평화로웠을 것이다. 이런 시를 '평소에' 좋아하면서 친구보다 높은 자리 가려고 애쓰고, 명예를 탐하고, 미운 놈 혼내주려고 안달하는 직장생활을 해왔단 말인가? 이 차분한 시를 읽고도 심장이 요동치고만 까닭이다. 알면서 저지른 죄는 더 크다. "나는 이 시처럼 살지 못했습니다"라는 고백이었다면 차라리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최고를 찍으려고 죽자 애쓰다가 결국 원하는 자리를 얻지 못하고 떠나며 남기는 말이 "그까지 것 술 한 잔만도 못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면 못 먹는 밥상에 재 뿌리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욕망의 꺾임을 '저건 틀림없이 신포도일 거야'하는 마음 속으로 자위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바깥으로 꺼내 공감해달라면? 답은 이럴 수밖에. 하루아침에 득도한 것마냥 이런 시를 품어 본댔자 '그까지 것이 다 무엇입니까?'


요즘은 60세 전후에 퇴직해도 너무 젊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어서 좋겠다 부러워들 하지만, 것도 60세까지 일하고 10년 전후로 세상을 뜰 때의 얘기다. 팔구십은 기본이고 백세를 넘기는 게 결코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에 60세는 너무 이르다. 죽어라 출세의 고속도로를 활주 하다가 60세에 갑자기 절벽을 만나 그제야 인생무상을 얘기하는 건 아직 한참 남은 인생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이치에도 맞지가 않다.


좀 이른 시기에 속력을 줄이고 주위를 돌아보며 은퇴 이후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선배들을 보고 싶다. 조직의 후광이 아닌 자기만의 실력과 철저한 준비로 '나는 앞으로 이런 일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하며 떠나는 마지막 인사를 듣고 싶다. 그게 풀빵 장사여도 좋고, 농사일이어도 좋고, 동네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이어도 좋다. 저 멀리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난다면 더욱 뜨거운 박수를 쳐드리겠다. 기껏해야 한 몇 년도 못 가는 전관예우 자리 말고, 자신만의 길을 닦아서 설레는 맘으로 새출발하는 선배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뒤 공부를 해 한의사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지인이 있다. 임원으로 퇴직하면 고문 직함에 사무실, 비서까지, 남은 인생 확실히 챙겨준다는 바로 그 기업이다. 다 포기하고서, 이제껏 살아보지 못한 인생, 더 의미 있는 자기만의 인생 후반부를 살기 위해 도전한 그의 인생이 나는 부럽다. 졸업식 뜻하는 영어단어 commencement는 '시작'을 의미한다. 직장 퇴직도 retirement가 아닌 commencement,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이는 게 이 시대의 순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