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보니 제목이 좀 섬뜩하다. 대개 글을 쓰고 제목을 다는데 이 글은 자연스레 제목부터 시작했다. 쓰고 보니 브런치에 썩 어울리는 제목이다.
<날적이>란게 있었다. 응답하라 1995!
쿰쿰한 반지하 대학 동아리방 테이블 한편에 놓여있던 공용 일기장이다. 장르는 불문, 시도 쓰고, 참새 유머 시리즈도 나누고, 잔뜩 취해 선배 욕도 쓰곤 했다. 가끔씩 눈물로 번진 사랑고백도, 라면 국물 튄 얼룩도 빠질 수 없다. 왜 그 노트를 날적이라고 불렀는지 아직도모르겠다. 나를 적는다 해서 날적이?날마다 적는 날적이?그것도 아니면 날 것 그대로 적으라 해서? 80년대 학번도 이 노트를 썼다는데 그땐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렀단다. 인터넷이 없었던 90년대초까지 저마다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어느 대학 동아리방에도 하나쯤 있을법했던 이 날적이는 그 시절의 브런치였다. 같이 쓰는 브런치 매거진?나는 날적이의 주요 집필자 중 하나였다. 늦은 밤 빈 동아리방에 홀로 앉아 스무살의 충만한 감성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 빈 노트에 옮겨놓으면 다음날 선후배 동기들이 공감한다는 '댓글'을 남겨주었다. 때로는 장문의 답글도 뒤따랐다. 그걸 보는 기분이 참 설레고 좋았다.
날적이가 자취를 감춘 것은 졸업할 무렵 동아리 홈페이지란 게 생겨난후다. 날적이를 없애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홈피 자유게시판에 자리를 내줬다. 졸업 후 십 년 만에 동아리방을 다시 찾았을 땐 날적이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동아리방이 다른 건물로 이사 가면서 날적이를 보관하던 서재도 폐기됐단다.
날적이에 한 번도 내 이름을 쓴 적은 없다.
어떤 글쓴이들은필명을 쓰기도 하고 J.S. 나 Y.J. 같은 이니셜을 남기기도 했지만, 난 그마저도 남기지 않았다. 나를 숨겨야 할 의도는 없었지만 굳이 이름을 적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재밌는 건, 이름을 쓰든 안 쓰든누가 쓰더라도 결국은 저자가 누군지 모두 알게 된다는 사실. 필체도 한몫했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필체를 달리 꾸며 써도 글에서 풍기는 일관된 뉘앙스와 문체는숨길 수 없었다. 자주 쓰는 단어나 표현, 느낌을 표현할 때 찍는 점의 개수, 띄어쓰기.. 그 모든 디테일이 단서다. 그때 난 글에도 지문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내 익명게시판에 글을 두어 차례 쓴 적이 있다.
올라오는 글은 대부분 단순 민원에 관한 내용이다. 주차장이 좁다. 경비대가 있는데 숙직을 왜 하나. 휴가를 자유롭게 쓰게 해 달라. 야근이 너무 많다. 대부분 툭 내던지는 두 세 문장이 전부다. 익명이라고 해서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진 않지만, 그걸로 만족하기엔 너무 삭막한 게시판이다.나의 민원 역시 사소했지만 날적이에 적듯 브런치에 적듯 정성을 담아 썼다. '좋아요' 일색에 공감한다는 댓글도 잔뜩 달렸다.
그러고 한 달쯤 지났을까, 후배 몇 명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난아연실색했다.
"일전에 선배가 익게에 쓴 글 너무 좋아서 캡처해놨어요"
내가 글썼다고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다.
아니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최소한 내가 쓴 게 맞는지 물어는 봐야 하지 않나! 확인 절차도 없이 쑤욱 들어오는데 나는 두 손 뒤로 묶인 채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가 썼다는 사실에 조금의 의심도 두지 않았다. 끝까지 묵비권을 사수했지만 명백히 불리한 묵비권 행사였다. 이니셜을 남긴 것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아마도 나랑 이메일을 몇 번 주고받았거나 내 책을 읽은 동료들한테는 글의 지문이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보수적이고 삭막하기로 이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조직에서 나훈아의테스형이 나오기 전부터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 부르던 내 글은 들통나기 딱 십상이지.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꽤나 많았던 걸로 기억되는 '좋아요' 그리고 공감 댓글들. '아.. 내가 이 조직을 너무 차갑게만 보았구나'
"아빠, 브런치에 글쓰면 돈나와?"
브런치 삼매경에 빠진 아빠를 보고 아들이 대뜸 묻는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고 하자 아들은 차라리 돈이 되는 유튜브를 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그 시절 왜 나는 날적이에 나를 마구 적어댔을까?어쩌면나를 드러내고픈 욕구에서였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자랑이나 으시댐과는 좀 다른 차원이었다. 글쓰기는말이나 행동이 담지 못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일상에서 무시되고마는 것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였고, 내 생각이 곧 나니까나를 좀 제대로 알아달라는 처절한 외침이었다.
애초부터 익명의 글이란 형용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쓰는 이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려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