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모든 것이 새롭다. 그중 하나가 커피다. 동료들과 점심식사 후 커피 테이크아웃할 때마다 놀란다. '얼죽아' 들이 이렇게 많다니.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이제 마이너리그로전락했다. 한겨울에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 점원한테서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라고 질문을 받는 게 참 어색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꼭 "따뜻한"을 붙여서 주문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 같은 '쪄죽뜨'가 '커피가 뜨거워야 커피지'하고 궁시렁대 봐야 소용없다. 바야흐로 '뜨겁게'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아이스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TV에서 옥주현과 AI가 노래로 대결했다. 청중은 누가 옥주현인지를 맞힌다. 선택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AI와옥주현 둘 다 잘 불렀지만 이건 어떻게 해도 옥주현이 유리한 게임이다. 흡사 AI와 이창호의 바둑 경기를 연상시키지만 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바둑이야 AI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창호를 이겨버리면 그만이지만 옥주현 따라 하기는 얘기가 다르다.아무리 완벽하게 복제해도 진짜 옥주현이 될 수 없다.
<가짜 사나이>가 세간의 화제였다. <진짜 사나이>라는 공중파 프로그램을 모방한 유튜브 방송이다. 출연자들이 여러 구설에 오르는 바람에 생각보단 오래가지 못했지만 아마추어의 날것에서 오는 묘한 매력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TV를 켜면 채널 불문 트롯 오디션이 한창이다. 송가인과 임영웅을 배출한 원조 오디션을 창조적(?)으로 모방한 것들이다.
리얼돌 수입이 허가되었는 뉴스를 봤다. 진짜 여자처럼 생긴 인형이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끔찍하게 사람 같다. 감정을 느낀다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만큼 리얼하게 만들어졌다. 진짜 같아 보일수록 비싸다고 한다. 이걸 그냥 이상한 취미라고 치부하진 못하겠다.연애도 결혼도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진짜를 소유할 수 없어 가짜를 찾고. 진짜에 만족하지 못해 가짜를 만들어낸다. 때론 진짜를 넘어서기 위해 가짜를 창조해내기도 한다' 진짜 가짜가 뭐가 중요해, 내가 좋으면 장땡이지' 이런 쿨함이 대세다. 비혼 출산이 박수받는 시대에 리얼돌이 뭐가 어때서?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유행가 가사처럼 가짜가 판치는 세상, 가짜로 욕망을 채우는 게 당당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진짜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누가 뭐래도진짜는 존재하니까. 춘천 닭갈비 거리와 장충동 족발 골목의 식당들이 하나같이 원조 간판을 달고 있지만 진짜 원조는 그중 하나다. 허다한 종교와 신들 사이에서도 진짜는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진짜는 불편하고 귀찮다. 진짜는 때로 미련하고 오래 걸린다. 진짜는 좁은 길 어려운 길이다. 원조 맛집의 비결이 정성이라는 것도 같은 이치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진짜 모나리자와 대면했을 때의 전율은 절대 모방할 수가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대세인 건 인정하지만, 내가 쪄 죽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것은 아메리카노는 뜨거워야 제맛이어서가 아니라 뜨겁지 않으면 아메리카노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