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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랑바쌈 Oct 11. 2021

스타일의 문제

내가 못나서라고 인정하는 용기

야근하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전 칼퇴하는 스타일인데.
책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전 넷플릭스 스타일인데.
계획 세우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전 그냥 대충대충 사는 스타일인데.


게으름, 무책임함, 무능력, 의지 없음 이런 것들을 스타일의 문제로 포장하는 행태를 현실에서 자주 마주친다. 이 '스타일링' 단계로 가는 직전 단계가 '정당화'이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건 아는데 그렇게 못하는 합당한 이유를 찾는 게 정당화이다. 운동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나는 요즘 많이 바쁘니까" 운동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정당화라는 것은 적어도 옳고 그름, 바람직과 비바람직, 건강함과 비건강함에 대한 사리분별은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개선의 여지가 있다. 스스로 부끄러워 핑계를 찾는 정도랄까. 이 수준을 지나 스타일의 문제로 넘어간 사람은 상대하기가 좀 난감하다.

맞벌이하면서 육아에도 최선을 다하는 주부에게 한 여자 동료가 "어머 육아가 체질"이신가 봐요. 전 직장 마치고 카페 가서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스타일인데." 이런다면?


육아와 카페 수다는 스타일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려움과 쉬움의 문제이고, 노동과 휴식, 의식과 본능의 문제다. 아메리카노냐 카페라테냐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누구나 어려운 것보단 쉬운 게 만만하다. 좁은 길 보단 넓은 길을 선호한다. 쓴 것보단 달달한 게 끌리고, 일하고 공부하는 것보다 놀며 쉬는 것이 좋다. 이걸 스타일, 취향의 문제로 덮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비겁하다. 이런 행태는 때에 따른 고의(故意)도 있지만, 아예 의식적인 수준을 넘어 습관의 양태로 굳어져버린 사람도 있다. 상대방의 노력과 희생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버리고 자신의 무위(無爲)를 쏘~쿨한 스타일로 포장해버리는 것이다. 아침마다 골목을 청소하시는 할아버지한테 "아침마다 청소하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이런다면?


오래전 일이다. 한 지인에게 공동체에서 필요한 어떤 역할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거절당했다는 사실보다 거절의 이유가 못내 씁쓸했다. 자신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든지 능력이 안되서라든지(이 둘에 해당이 안 되는 건 명확했다) 하는 핑계를 대든 지 그게 아니면 "난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도 배려도 없고 공동체 의식도 없는 사람이요. 그냥 여기서 혜택만 볼 생각이니 귀찮게 하지 마시오" 차라리 이렇게 솔직히 까놓고 비난을 감수하는 용기라도 있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그 '스타일'이란 걸 내세워 가오는 또 잃지 않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내가 못하는 것은 내 능력이 부족해서,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아서, (가장 결정적으로) 귀찮고 게을러서이지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란 걸 분명히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새벽기도와 수요예배에 나가지 않는 건, 내가 '주일예배에 올인하는 스타일'이라서가 아니라 아직 믿음과 결단력이 부족한 데다가 게으르고 자기 관리가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도.



*커버 사진: 공부란 무엇인가(김영민)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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