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가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대 처맞을 때까지는."
핵주먹 마이클 타이슨이 한 말이다. 계획이란 참 쓸모없는 것이다.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가족들과 서아프리카에 살 때 말라리아라는 질병이 가장 큰 위협이었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 기생충 감염증이다. 미세한 기생충이 혈관에 침투해 폭발적으로 번식한다. 신속히 약을 먹지 않으면 사나흘만에 사망한다. 모기장을 치고 기피제를 뿌려가며 '계획'대로 대처해 다섯 식구가 일 년간 말라리아에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던 어느 날 밤, 막내의 몸부림으로 들추어진 그물 틈 사이로 모기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함께 자고 있던 우리 가족을 무차별 습격했다. 일주일의 잠복기가 지났을 무렵, 우리 가족은 연쇄적으로 쓰러져 모두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었다. 가족을 모두 입원시키고 내가 마지막으로 양성 판정을 받았다.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하다가 폭탄 투하로 한 번에 초토화된 것이다.
실존주의 사상가인 '장 폴 샤르트르'는 타이슨 식의 주먹철학을 배격한다. 원펀치 쓰리 강냉이로 계획이 무력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역설한다. 샤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인생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계획을 실현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그 계획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건 때문에 계획이 틀어졌어" 이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우발적인 사건'이란 건 없다고까지 했다. 사건을 주체적으로 내재화하는 것이 바로 '계획'이다. 그 사건이 '전쟁'이라고 해도.
사오십대 건강검진을 앞둔 사람의 '계획'이란 기껏해야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고혈압, 고지혈, 지방간, 당뇨.. 이런 것에 그친다. "술 담배 줄이고 운동을 더 해야겠어요"하는 의사의 뻔한 처방도 계획의 일부다. 말기암 시한부 3개월 같은 타이슨 핵펀치는 계획에 없다. 그건 계획을 무너뜨리는 한방이니까. 그러나 그 한방을 맞더라도 결코 존엄을 잃어선 안된다는 것이 샤르트르의 생각이다. 상황에 주체적으로 대처하는 것. 낙담하고 비탄에 빠지기보단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 나의 계획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그가 말하는 앙가주망(engagement)이다. 쉽게 말해서, 계획이란 상황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대면하느냐의 문제이다.
말라리아 사건이 있은 후 우리 가족의 아프리카 생활은 그 이전과 완전 달라졌다. 더 이상 말라리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말라리아도 이겨냈는데 뭐든 못하겠어' 하는 투지가 마음에 공고히 자리 잡았다. 웬만한 어려움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주변에선 좀 놀라는 반응이었다. 말라리아에 화들짝 놀라 짐 싸서 도망치듯 귀국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말라리아는 우리 가족에게 가끔씩 찾아왔지만, 그것은 더 이상 '한방'이 아닌 '계획'의 일부였다.
어쩌면 우리가 만든 계획은 계획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린아이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짜본들, 부모가 정한 결정에 따라가는 수밖에 없듯이. 우리 각자의 인생은 이미 잘 짜인 계획과 각본 속에서 움직여진다는 사실을 점점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확신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계획의 일부니까. 비극적 결말도 오케이. 지루한 해피엔딩보다 감동적인 새드엔딩이 나쁠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