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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랑바쌈 Jun 13. 2022

마지막 하루인 것처럼

단잠에 들기 전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A.I. 의 마지막 장면은 일상 중 이따금떠올라 인생의 이정표가 돤다.(스포일러 유)


불임인 부부가 A.I. 그러니까 인조인간 아이를 입양한다. 아이는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순 없지만 사랑받는 기쁨을 누린다. 진짜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버림받은 AI 소년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온갖 고초를 겪는다. 시간이 흘러 몇천 년이 지나고 지구 상에 인류가 사라지고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않게 될 무렵, 외계인들이 지구를 찾는다. 바다 깊은 곳에서 아이를 건져낸 외계인들은 이 불쌍한 아이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기로 한다.

엄마를 만나게 해 주세요. 

외계인들은 유전자 기술로 엄마를 복제해내고 아이에 대한 기억까지 재생시킨다. 그런데 되살린 엄마는 단 하루만 살 수 있다.

그렇게 아이에게 엄마와의 하루가 주어졌다. 장롱에 숨기, 책 읽어주기.. 그렇게 까르르 까르르 웃음으로 가득 찬 평범한 일상이 지나갔다. 엄마는 잠이 온다고 했다. 너무 졸려 견딜 수가 없다며 깊은 잠에 빠졌다. 아이도 함께 잠든다.


원이가 새벽에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특훈 가야지"


전날 일이다.

 반대항 피구대회가 있다며 비치볼을 던져 달란다. 볼을 피하는 훈련이란. 공 튀기소음이 심해서 애를 데리고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스포츠룸에 갔다. 공을 이리저리 던져줬다. 요리 조리 피하다 얼굴에 맞아도 공을 잡다가  손가락이 꺾여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더 세게 던져달란다. 아이는 피구왕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목덜미에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아빠, 이거 완전 특훈인데"

이대로 가면 국가대표라도 될 기세다.

그런데 아빠 코치가 문제다.

얼마나 던졌을까. 슬슬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아침 조깅으로 다진 기초체력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숨이 차 나자빠졌을 게다.

"그만 하자 아빠 힘들어"


그날 밤은 잠이 스르르 들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식지 않은 아드레날린이 원이를 다시 깨웠다. 꼭두새벽에 기상한 원이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미안했던지 아침 6시가 되는 걸 보고야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아빠, 특훈"


그러면 나는, 피곤한데 왜 귀찮게 하냐는 생각이 뇌리에 아주 잠시 들어왔다가도, 아들과 보낼 단 하루를 허락받은 영화 속의 엄마에 빙의되어 눈을 번쩍 뜨고 만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비치볼을 챙겨 들고나간다.


옛다 받아라. 힘껏 볼을 내던진다.

"공을 끝까지 봐"

"다리를 움직여서 피해야지"


아마 다음날을 기약할 수 없다면 더 열심히 던졌을 것이다. 그렇게 마구 공을 던진 날의 밤은 잠에 빠진다.


백 년을 사신 김형석 교수는 사랑 있는 고생이 행복이라고 했다. 공던지기는 나에게 고생이고 이 고생은 오직 사랑 때문이니 이건 틀림없는 행복일 것이다. 이 행복으로 단잠에 들 수 있으니 그 또한 행복한 결말인 셈이다.


하루나 백 년이나 창조주한테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그 하루라는 평생에, 평생이라는 하루에 나는 고생 있는 사랑을 충만하게 담아내고 후회 없이 스르르 눈이 감겨 단잠에 빠질 수 있을까. 바람이 죄가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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