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콜로라도아재의 좌충우돌 콜로라도 생활적응기

1화.'대구아재'에서 '콜로라도아재'로

어느새 여기 콜로라도에 온 지 1500여 일이 지나고 있다. 벌거숭이로 태어나 ‘인생’이란 길을 걷고, ‘삶’이란 무대 위에 선 시간 중 약 9.3% 정도의 시간을 여기 미국 콜로라도에서 보낸 것이다.

 

콜로라도에는 재외 공관 추산 약 3만여 명, 실제로는 그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대략 그 3만여 명의 미국행(또는 콜로라도행) 사연이 제각각 존재하듯, 아재 역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멀리하고 여기까지 온 사연이 있다. 콜로라도아재(필명)의 좌충우돌 미국 생활(정확히는 콜로라도 생활이 맞겠지만) 적응기 그 첫 번째로 아재가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 시간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재가 여기 미국으로 오기를 결심한 것은 2015년 겨울, 10여 년간 천직으로만 여겼던 군대에서 나와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시기였다. 고향인 대구에서 자동차 부품업체 개발팀에서 근무하면서 ‘대구아재’로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결혼 3년 차, 아재의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 무렵이기도 하였다.

 

현장직 포함 약 300명 규모의 제법 작지 않은 규모의 회사였지만, 지방의 중소기업의 현실이 그러하듯(5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현장직이 출근하기에 사무직도 출근해야 하는 납득이 안 간 토요일 오전 근무에, 효율적이지 못한 근무시간(아침 8시 출근에 저녁 7시까지 암묵적으로 야근하는 분위기), 그리고 퇴근 후 나날이 술자리 회식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과연 이렇게 사는 삶이 제대로 된 삶일까’란 생각이 들면서 곧 태어날 아이에게 아빠란 존재는 어떤 존재가 될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 이런 복잡하고 고민이 많던 시기에 미국 테네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협력업체 장교(ROTC) 출신 선배님으로부터 “미국 와서 살아보라”는 지나가는 말씀이 계속 맴돌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게 고민과 생각만 하던 중 아이가 태어나고 그 해에 크리스마스를 맞아 처가댁에 백일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깜짝 방문을 했을 때 지금의 아재의 멘토분들이신 리쿼스토어 K모사장님(지금은 버지나아에 거주), 그리고 K사장님의 소개로 알게 된 현재 0 마트에서 근무하시는 K모형님을 만나면서 여기 미국행 결심을 확고히 하게 된 것이다.

두 분께서는 지금도 미국 생활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시고 있으신데, 당시 연휴를 맞아 잠시 들린 아재에게 본인들도 한국생활과 미국 생활을 해본 경험자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며 여기 생활을 적극 추천해주셨다.

 

국제결혼을 한 아재의 아내의 고향이 여기 ‘콜로라도’라 아재에게 미국으로 오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문제였을 뿐이었던지라, 다른 문젯거리나 이주 준비절차가 오래 걸리지는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는 상태였다. 다만, 30여 년을 살아온 한국을 떠난다는 결정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직장생활 간에는 늘 1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전국 팔도로 전근을 다녔던 처지라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지만, 국가를 넘어 이사를 하고 산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던 것이다. 애당초 아내와 만나 결혼을 할 때도 한국에서 살 것을 줄곧 이야기를 해왔고, 경제적은 여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허투루 낭비만 하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그냥 그냥 먹고살만한 수준은 되었다. 어찌 보면 첫째의 운명이 여기 미국에서 커나갈 운명이었기에 아이가 아재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가 태어날 때는 자기가 먹을 숟가락은 들고 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거 같은데 아마 그 숟가락에 아재가 한 숟가락 얻어먹고 그 값을 단단히 치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처가 어르신들께 손주를 보여드리러 왔다가 미국행을 결심하고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앞으로 미국에서 가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것 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가진 것이 많아 사업할 밑천이 있는 형편도 아니요 그렇다고 특출 난 기술, 재능이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직장을 구할 처지도 아니었기에, 당시 자동차 업종 계통에 종사하고 있기도 하였고, 어렸을 적부터 손재주는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자동차 정비분야에서 일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다니던 회사에는 사표를 내고 한국 정부의 실업자 취업교육을 신청 후 자동차 정비기술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비자가 발급되고 유효기간 안에 미국 본토에 입국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최대한 유효기간을 꽉 채워 한국에서 있다가 오려고 비행기표를 예약한 게 한국 날짜로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다음날 새로운 대통령 당선을 보면서 한국을 떠나게 된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말았다.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해 한국에는 국정 논단 사건이 터지고, 미국 대사관에 비자 인터뷰를 하러 갈 때는 광화문광장에 촛불집회가 늘 일어나 미국 대사관 주위로는 무장경찰요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으며, 비자 유효기간 동안 한국에 가족들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보낼 때는 대통령 탄핵인용안이 결정되면서 조기 선거를 치르게 되는 일이 함께하였다.

 

누군가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되고 한국을 떠난 거냐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인지 비자가 나오고 이미 수개월 전에 가격이 저렴하여 해당 날짜에 비행기를 예약하고 있었던 것뿐인데, 나라에서 선거가 그렇게 잡은 것뿐인데 말이다. 한국을 떠나는 날까지 아재의 한국생활은 참 재미진 것 같다.

 

이렇게 아재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교육시켜주고 직장까지 제공해준 아재의 ‘조국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이제는 아재 아이들의 ‘조국 U.S.A’에서 ‘콜로라도아재’의 삶을 살고 잇는 중이다.

 

혹자들은 묻는다 왜 ‘콜로라도아재’냐고. 타고 다니는 차가 Chevy의 ‘콜로라도’인지 묻기도 한다. 여담으로 아재는 현대 기아차만 구매해서 타고 다니는 중이다.

다른 가정은 모르겠는데 아재의 집에서는 친인척들을 호칭할 때 ‘지역’+’ 호칭’을 붙여 부르는데, 예를 들어 서울 이모, 포항 작은아버지…이런 식으로 부르고 있다.

그래서 ‘대구아재’에서 ‘콜로라도아재’로 필명과 유튜브 채널명을 사용 중인 단순한 이유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