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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아재의 좌충우돌 콜로라도 생활적응기

2화.미국에서의 의식주(衣食住) – 의(衣)

삶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는 입는 옷(衣), 먹는 음식(食), 사는 집()의 순서로 나열되고 있다. 주거하는 집이야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치더라도, 먹는 것이 우선일 것 같은데 입는 옷이 먼저인 것이다. 예전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의 가사에도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옷 한 벌은 건졌잖소”라고 나오기도 한 것 같다. 곤궁한 상태를 표현할 때도 '굶주리고 헐벗다'가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다'로 쓴다. 안 입고는 살 수 있어도 안 먹고는 못 사는데 왜  보다 먼저일까.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 앞에 쓴 것은 옷이 삶의 기본 요소인 동시에 신분 계급 등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라며 "예를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으로 이런 표현이 관용적으로 굳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청춘을 보낸 곳에서 보급받은 옷들, 그리고 한국 명절때면 늘 한복을 입고 가족사진

의식주의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앞으로 썰(!)을 풀려는 것이 ‘의식주’란 주제이기에 순서대로 그 첫 번째 옷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미국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정성껏 우체국 국제소포 박스에 담은 것은 그동안 간직했던 교복과 군에서 보급받은 전투복, 근무복, 정복 등이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비행 편 수화물에 소중히 모셔온 것 또한 각종 문서와 함께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과 각종 무술단체에서 수련 시 입었던 도복 등이었으니, 어찌 보면 아재도 은근히 알게 모르게 의(衣) 집착이 있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머지 옷가지들은 바리바리 싸들고 오기에는 부피만 차지하고 특별한 추억이 얽힌 것들도 없는 것 같아 대부분 재활용 수집함에 넣어버리고, 미국에 가면 새로 장만한다는 생각으로 왔었다. 최근 각종 언론과 미디어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본의 아니게 이사를 준비하면서 실천하게 된 것이다. 가끔씩 옷장에서 옷을 하나씩 꺼내 한 번씩 만져보고 옷에 얽힌 추억에 잠겨보면서 앞으로도 입고 다닐 것인지, 아니면 추억이 많아 간직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생활의 지혜일 것이다.


그렇게 이곳에 와서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시기에, 본격적으로 여기서 입고 다닐 옷가지를 구할 때 가장 많이 이용했던 곳이 Goodwill과 Arc Thrift Store 같은 중고 잡화점과 가격할인점인 Ross였었다. 얇은 주머니 사정도 있었지만, 원래부터가 브랜드 매장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아녔던지라, 자연스럽게 찾게 된 것이 할인점이나 중고 마트였다.

중고 잡화점은 요일별로 가격 할인해주는 것이 매력인데, 특히 Arc 같은 경우에는 매주 토요일은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상품에 붙는 주로 핑크색을 제외한 4가지 색상(화이트, 블루, 옐로, 블루)은 반값 할인을 해주어서 지금도 토요일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Arc Tour”를 하곤 한다. 아재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두 중고 잡화점의 차이로는 Goodwill이 좀 더 깨끗하고 좋은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고, 그에 따른 가격도 Arc보다는 다소 비싼 것 같이 느껴진다. 물론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혹시 주변에 있다면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Off-line 말고 각종 On-line상으로도 중고물품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대표적으로 craigslist, Nextdoor, Facebook의 Marketplace 등, 추후 온라인 중고물품 사이트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상기 언급한 중고 잡화점을 이용한 이유로 쇼핑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것 같다. 중고라 하지만 일반 매장과 다름없이 구역이 나뉘어 사이즈별, 종류별로 정리 정돈되어 가격표까지 붙어있으니 기분은 새것을 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간혹 아예 신상품 그대로의 상태인 것도 구할 수 있으니,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어서 아직까지도 이용하고 있다. 또한, 이 중고물품 상점의 특색으로 느껴지는 것이 기부를 받아 이루어지는 곳이다 보니 매장의 물품을 보면 매장이 위치한 주변 동네의 경제적 수준도 얼추 유추할 수 도 있어 재밌기도 하다.


중고물품 상점에서 외투와 바지, 티셔츠, 모자 등을 구했다면 신체 중요부위에 닿는 속옷과 소모성 의류인 양말은 할인매장에서 구했다. 주로 가는 곳은 ROSS인데 주로 활동하는 생활범위 안에 매장이 무려 5-6군데나 있어 이곳도 따로 날을 잡고 투어를 할 정도로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이다. 새 제품을 이미 할인된 가격에 파는 곳이지만, 여기에 추가로 할인이 되어 있는 제품이 있어(주로 가격표에 핑크 마크로 추가 할인 금액 표시) 새 제품을 평소 가격보다 최대 70~80%까지 절약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이사 와서 입고 다닐 옷가지를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부터 평일에는 직장에서 제공해주는 유니폼을 입고, 나머지 일상생활 간에는 주로 개량한복과 군 시절 입고 다녔던 군복을 아직도 즐겨 입고 다닌다.


가끔 지인들께서 생활한복 입고 다니는 아재를 보고 “오 굿굿” 또는 “참 너답다”라고 하시는데, 비록 몸은 미국에 와있지만 나의 조국은 ‘대한민국’ 임을 잊지 않고, 서두에 언급되었듯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아재는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기에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아재는 한국인이니 한복을 입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복을 입는 것에는 남의 시선에 신경을 안 쓴다면, R.O.K(Republic of Korea) Army가 적힌 옷이나 군복을 입고 다니는 것은 여기 현지인들의 시선을 조금은 신경을 쓴다고 할 수 있다. 주로 군복을 입는 상황은 처음 방문하는 지역을 간다거나 우범지역을 가게 될 경우에는 마치 동물들의 보호색처럼 밀리터리룩으로 입고 다니는 것이다. R.O.K Army 마크로 ‘나 군대 다녀온 놈이야, 건들지 마’라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는 것인데, 옷을 입을 때가 아니면 한국서 각종 훈련 수료 후 받은 패치와 근무했던 부대마크로 잔뜩 꾸며진 전술 배낭을 메고 다닌다. 그러다 가끔 R.O.K Army를 알아보는 이들이 말을 거는데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대부분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미군 출신들이다. 가끔 그런 낯선 이방인들(어찌 보면 내가 이방인인데)과 군대 썰을 나누는 것도 쏠쏠한 군대 추억을 소환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와서 가족행사처럼 굳혀가고 있는 행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의 명절이 되면 반드시 ‘한복’을 입고 집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것이다. 결혼식 하고 입을 일이 없던 한복을 어떻게 활용하나 생각하다 찍게 된 것이 어느새 이제는 가족의 역사 기록사진 모음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없던 가족이 늘기도 하고 누군가는 커가는 것을, 누군가는 늙어가는 것을 1년에 두 번씩(주로 추석과 설)에 남기고 있는 중이다.


어느새 올해 추석도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재는 가족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방세계에 있는 거룩한 존재와 천지신명, 조상님들과 조국 대한민국에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을 걸치고 이 좋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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