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베르니
파리에서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의 지베르니. 지베르니엔 따뜻한 햇볕이 있었고, 다소 서늘한 공기가 있었고 너무나 아름다운 수련 연못이 있었다. 첫인상은 조용한 마을이다. 마침 은발의 다정한 부부가 대문을 나섰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그들을 불러 세웠다. 하얗게 칠한 집에는 곳곳에 색색의 화분이 있었고, 작은 꽃들이 피어있었다. 낮은 담 위로는 하늘이 비스듬히 내려와 있다. 흰 벽이 강도 센 햇빛에 더욱 희게 색을 드러내는 듯 했고, 그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현상된 사진을 보며 나는 자꾸만 이 집 앞을 떠올렸다.
“얼마나 머무니?”
“오늘 하루요. 로마로 가야하거든요."
사진을 찍고서 노부부와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떠났다. 노부부는 아마 그 짐머의 주인이었던 모양이다. 모네 생가에 도착하자, 보이는 게 꽃 천지요, 영감의 세계였다.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이내 증발해 버리고, 아름다웠던 모네 정원의 단상만이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다. 모네는 말년에 이곳 지베르니에서 42년간 지내며 대작인 ‘수련 연작’을 250여 점이나 남겼다.
어릴 적 모네는 15세에 이미 주변 인물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모네가 그린 <인상 : 해돋이>를 보고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인상만 남는 그림’이라고 혹평을 퍼부으며 논란을 낳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상파'라는 이름이 붙게 된 사건이 되었다. 미술계의 기념비적인 이 그림 속에는, 창백한 여명 속에서 이제 막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생명력을 강하게 발산하며 르아브르 항구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련 연작이 그려진 모네 생가의 수련 연못을 보자 일단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모네의 수련 연작 그 자체가, 실제로 그곳에 있었다. 그림으로만 보던 모네의 수련 연작.
하늘이 비치는 아름다운 연못의 모습, 버드나무 가지가 길게 휘어져 연못에 가만히 차양을 드리운 모습, 연못 위에 정지한 듯 떠 있는 수련잎들의 모습. 모네는 지베르니에 있는 수련 연못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수련 연작에 몰두했을지 상상할 뿐이다.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에 걸려서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붓을 놓지 않고, 수련 연작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수련 작품이 고통과 좌절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피난처’이자 진정제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고 한다.
잔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모네의 수련을 볼 때면, 차분하게 안정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구름도 버드나무의 기다란 가지도 수면 위에 반영되어 평화로이 비치고 있었다.
아치 형태의 일본식 다리마저 녹색이다! 녹색은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색이며,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가슴이 답답할 때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노라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모네 생가와 갈대가 웃자란 지베르니의 경광 등등 지베르니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에 감격하는 동안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여유가 전염되었는지, 지베르니에 너무 오래 지체하고 말았다. 몽파르나스역에 도착하면 뛰어야 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맺혔다. 버스를 놓치면 로마에 갈 수 없게 되니, 경공술이라도 배우고 싶어지던 순간이다. 그로부터 Bercy역에서 무사히 로마행 기차를 탈 때까지 프랑스의 하늘은 희미해진 빛으로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을 배웅했다. 여행 이후 모네의 수련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날의 평화가 지배하던 지베르니로 길 한번 잃지 않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