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땅끝마을
'넌 모를 거야! 우린 모두 부서진다고! 우리 파도는 부서져 다 없어져버린단 말이야! 정말 끔찍하지 않니?' 그러자 다른 파도가 말한다. '아냐, 넌 잘 모르는구나. 우리는 그냥 파도가 아냐. 우리는 바다의 일부라고.' 모리 선생님은 다시 눈을 감는다. "바다의 일부, 그래, 바다의 일부지." 그는 말한다. 나는 모리 선생님이 공기를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들이쉬었다 내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中 미치 앨봄
바로 여기에서 3대양이 만난다.
아라비아해, 인도양, 벵갈만이 만난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땅끝 마을, 깐야꾸마리(Kanyakumari)에 당도 했을 때, 파도가 거세게 방파제에 부딪히고 있었다. 천연적으로 방파제를 이룬 큰 바위들은 거친 파도가 아무리 부딪혀온 대도 아직 한참 멀었다는 듯 기고만장하게 모가 난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방파제로 내려갔다. 뾰족해서 위험했고, 바다 가까이 쪽은 이끼 때문에 미끄러워서 더욱 위험했다. 하지만 돌아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거의 기어가는 모습이었지만 마음만은 승전한 장군과 같았다. 다리에 물이 철썩 엎어졌다. 터키색, 황토색, 파란색으로 3대양의 물색깔이 확연히 다르단 것을 알 수 있었다. 파도가 철썩이며 몸을 쓸어갈 듯 하다가 또 다시 높이 점프해 몸을 넘어뜨릴 듯 했다. 피곤이 몸을 엄습하듯 옷 역시 형편없이 젖어버리고 말았다. 내 말은 그 파도에 내 옷이 젖었다는 것이다! 3대양이 서로 하나가 되려고 거세게 몸부림치는 가운데 우리가 있었다. 파도는 너무 거칠어 어린 왕자가 와도 길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까만 어둠이 내려도 바다는 잠들지 않았다.
이골 물이 주루루룩, 저 골 물이 쏼쏼,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合水)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지고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석(屛風石)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巢父許由) 문답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가 예 아니냐. (이 골짜기의 물이 주룩주룩, 저 골짜기의 물이 쏼쏼 이 골짜기 저 골짜기 물이 한데 합쳐져서 너무 급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위로 솟아올랐다가는 내려앉아 펀펀하게 흐르고, 길게 이어졌다가는 방울이 되어 저 건너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를 향해 으르렁거리면서 흐르는 물결이 하얀 구슬처럼 흩어지니 소부와 허유가 문답을 하였다는 기산의 영수가 아니겠느냐?)
<유산가 中> 작자 미상
동방의 한국을 떠나 인도땅에 나는 서있었고, 이 여행은 서방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미지의 영역을 탐사한 콜럼버스의 환희가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인도의 땅끝 마을, 깐야꾸마리에 도착한 직후 나는 무척 지쳐 있었다. 여행의 막바지였고, 촉박하게 서둘러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난방시설이 열악해서 펄펄 끓는 물을 1.5리터 페트에 담아서 그러안은 채 잠드는 나날이었다. 침대 위에서 추위와 싸우며 집에 돌아가고 싶던 날들이 언제라고 이제는 가고 싶은 곳만, 좀 더 서두르면 갈 수 있을지 모를 곳만 자꾸 생각이 났다. 3대양 속에 서서 잠시나마 파도와 한몸이 되었다.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루게릭병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는 모리 교수의 이야기이다. 모리 교수는 부서져 다치고 사라지는 게 두려운 작은 파도들을 다독인다. 파도는 부서져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바다의 일부인 거라고 말이다. 나이 한 살, 한 살이 파도의 파동이다. 더 작은 단위로 하루하루가 부서지는 파도다. 거친 파도도, 여려터진 파도도 어쨌든 바다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