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하파데이(안녕하세요)”하고 섬의 언어로 바다에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그 투명한 물이 사랑스러워 말을 걸지 않곤 못 배겼다. “바다처럼 그리 맑고 투명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마음으로 말을 건다. 그리하면 바다에 사는 인어는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음, 갈매기처럼 춤추는 마음, 늘 기쁘게 살면 어때요?"라며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내게 화답할 것 같다. 커튼을 젖히자 야자수가 서 있는 초록빛의 정원 너머 바다가 펼쳐진다. 파도소리가 깨끗한 괌의 물색만큼 청량하다. 이곳의 물빛은 세 가지이다. 수영장의 하늘색 물빛, 바다 앞쪽의 에메랄드빛, 바다 뒤쪽의 짙푸른 물빛까지 세 가지 색으로 층층이 색이 나뉜다. 괌의 바다는 해안가쪽은 에메랄드색인데 좀 더 멀리 바라보면 자로 재어 정확하게 갈라놓은 듯 파란색 바다로 구분이 된다. 수영장에서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면 바로 투몬비치와 연결된다. 야트막한 깊이에서 다양한 열대어종들을 볼 수 있다. 밤이 오면 인파가 빠져나간 고즈넉한 수영장의 선베드의 누워 밤의 정취를 누리면, 바다는 '시레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 하갓냐(아가나)에 사는 시레나라는 장난기 어린 소녀는 강 근처에 살았다. 시레나는 물놀이를 좋아했고, 집안일을 쌓여있을 땐 어머니 몰래 수영을 하러 강으로 나갔다. 어느 날, 시레나의 어머니는 그녀를 보내 코코넛 껍질을 모아 불을 지피라고 시켰다. 코코넛을 찾으러 간 시레나는 이번에도 강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헤엄치며 놀았다. 어머니는 시레나를 애타게 찾았다. 시레나의 말리나(대모)가 방문하러 왔고, 어머니는 이윽고 딸에 대해 불평을 시작했다. 말을 할수록 기가 차고, 화가 났다. 어머니는 급기야 “시레나는 물을 그리도 사랑하니, 차라리 물고기가 되는 게 나아!"라고 말했다. 이 말이 끝나자 강에서 수영하는 시레나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시레나의 다리는 이제 비늘이 덮인 물고기의 꼬리로 변해 있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지만, 자신의 저주를 되돌리기엔 늦어버렸다.
시레나 물에서, 어머니는 땅에서, 이제 이별해야 함을 알았다. 시레나는 어머니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머니가 나를 저주했을 때 화가 많이 나서 그런 거 알아요. 어머니,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되돌리기엔 늦어버렸고, 저는 이제 떠나야 해요. 마지막으로 저를 보세요. 부디 이제 걱정 말고 평안히 지내세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흐르네요.”
시레나는 파도 사이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의 이야기는 선원들에 의해 이야기가 전해졌다. 시레나의 이름은 스페인어에서 차용되었는데, 그리스로마 문명에도 선원의 여신인 시레나가 존재했기 때문에 스페인 선교사에 의해 차모로 사회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괌의 북부 여행에 속하는 ‘사랑의 절벽’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녀가 머리카락을 한데 묶고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마음 아픈 전설이 있다. 섬나라이기 때문인지 바다에 얽힌 애수어린 전설들이 구전된다.
#없다
차모로어로 ‘없다’라는 뜻의 단어가 ‘Guaham’이다. 온갖 철학적 소양을 갖다 붙여 괌의 이름이 어떤 곡절로 ‘없다’가 되었는지 헤아려보려 했지만 해답은 의외로 싱겁다. 마젤란의 이야기다. 폭풍우를 만나 산티아고호가 난파되고, 평온한 바다에 도착한다. 마젤란은 그 바다에 태평양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가 지나온 해협을 마젤란 해협이라고 명명했다. 태평양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항해가 계속됐고 지금의 괌에 도착하게 된다. 이들의 배를 처음 본 차모로 원주민들이 보트를 훔쳐가는 사건이 터진다. ‘괌’이란 이름은 차모로족 추장이 “우리 부족 중 도둑은 없다”라고 해명하며 옥신각신 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괌은 이후로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으로 미국령으로 바뀌었다가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에 점령되고 미국에 탈환되는 등 여러 차례 홍역을 앓게 된다. 어쨌든, 변덕스러운 바다를 지나 이 낭만적인 섬에 도착한 마젤란은 아름다운 섬의 풍광에 취했고, 곧 차모로 원주민들과 조우해 '없다'라는 섬 이름이 생기게 된다. 풀지 못한 한 수수께끼의 답이 의외로 '無' 였을 때 어리둥절할 때가 있었다. 이름이 있어야지, 답을 알아야지, 돈이 있어야지, 가족이 있어야지, 학벌이 있어야지, 재능이 있어야지, 무조건 있어야 하고, 기준에 맞춰야 하는 게 너무 당연했다. 하지만 맑은 물처럼 살려면 없는 것도 필요하고, 없다는 답도 필요하다. '맑다'는 사전적 의미로 '탁한 것이 섞이지 아니하다, 또렷하다, 소리가 상쾌하다' 등의 뜻이지만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고 박하다'의 의미도 있다. 맑으려면 오히려 넉넉한 게 독이 될 때도 있다. 꼭 이름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가족이 없어도, 학벌이 없어도, 재능이 없어도, 바다처럼 맑을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