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남산탑

프랑스 파리

by 호림

나는 1910년 나의 모국을 떠났다. 그 당시 파리가 필요했다. 파리의 빛, 자유, 그리고 기술의 연마가 필요했다. 파리는 나의 그늘진 세계를 태양처럼 비춰 주었다. 그러나 나의 모국을 잊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을 좀 더 선명하게 보았다. <마르크 샤갈>


000017_1_waifu2x_photo_noise3_tta_1.png


부드러운 곡선의 에펠탑을 바라보며 멍하니 이 건축물을 지을 때 흉물이라고 들고 일어났던 사람들을 생각했고, 본래의 색깔-에펠탑은 원래 빨간색이었다-을 생각했으며, 선글라스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호리호리한 구조물을 보며 그 이름의 조합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또 다른 구조물인 남산타워를 떠올렸다. 땅에 뒹구는 성마른 낙엽처럼 씁쓰레한 웃음이 났다. 에펠탑의 단어 구성처럼 남산타워를 '남산탑'이라고 하려니, 여간 이상하지 않아서 몇 번 입안에서 그 말을 반복했지만 입에 붙지 않았다. '타워'라는 말이 들어간 자리에 '탑'을 붙이니, 인정하긴 싫지만 촌스럽기까지 했다. '에펠탑'은 멋진데, '남산탑'은 왜 촌스러운지 모를 일이다. 에펠탑을 바라보며, 남산타워를 그리워하는 영문도 모를 일이다. 서울집에 돌아와 공기를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활짝 열면 선선한 저녁 바람이 집안으로 불어닥쳤다. 아이 아빠의 하얀색 셔츠가 가지런히 널려 있고, 그 너머로 반짝거리는 남산타워가 작게 보였다. 잠시 저녁 공기를 쐬며, 남산타워를 보면 그럴 땐 또 다시 에펠탑을 떠올렸다.


러시아의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정착한 마르크 샤갈, 그는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 했다. 러시아의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정착한 마르크 샤갈도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 했다는데, 그도 비테프스크에선 파리가 그리웠을까.


에펠탑의 신랑신부_샤갈.jpg

에펠탑 <에펠탑의 신랑신부> 샤갈



“그녀는 평생토록 나의 그림이었습니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은 아내인 벨라를 어찌나 사랑했는지, 그의 그림은 유독 화가 자신과 아내 벨라가 함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 그림 속에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벨라와 보랏빛 수트를 차려 입은 샤갈의 모습이 보인다. 신혼의 기쁨인지, 사랑의 희열때문인지 샤갈의 몸은 아예 공중에 떠 있다. 파란색으로 표현된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옆에 있는 태양도 사랑에 겨운 샤갈 부부를 축복하는 듯 빛을 발하고 있다.


마르크 샤갈의 '파리의 추억'이라는 작품은 색종이로 콜라주한 것처럼 색면들로 분할된 모습이다. 에펠탑도 찾을 수 있고 파리의 여러 장소들을 볼 수 있다. 샤갈 자신과 아내인 벨라처럼, 한 쌍의 커플도 보인다.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등 마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색들이 그림에 한층 생명력을 더한다.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색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샤갈은 1차 세계대전에 이어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어야했는데,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으로 망명을 했다. 격랑 속에서 러시아와 프랑스, 미국을 떠돌았던 그의 그림에 전쟁의 황폐함은 찾기 힘들다. 밝고 순수한 색들의 마술사인 샤갈이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다는 것은 잘 믿어지지 않는다. 화려한 색채와 반대로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이 어두워보이는 이유다. 에펠탑이 처음 건립될 때, 많은 사람들이 탄원서를 내며 반대를 했다. 소설가인 모파상도 그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에펠탑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에펠탑 때문에 파리를 떠나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찌됐건 에펠탑은 프랑스의 심볼이 되었고, 그 이름은 설계자인 구스타프 에펠(Gustav Effel)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이전 16화조드푸르, 파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