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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Nov 15. 2019

천문시계탑

체코 프라하

그는 시계탑의 시계가 새벽 세 시를 쳤을 때까지 공허하고 평화로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창문 앞에서 밝아지는 바깥의 광경을 보았다. 그 다음 머리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완전히 아래로 떨어지고 그의 콧구멍에서 그의 마지막 숨이 약하게 새어 나왔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中


프라하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체코의 명물인 천문 시계에 당도했다. 천문 시계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정시마다 천문 시계의 12사도 인형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이고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인파 틈에서 영상에 그 모습을 담으려고 팔을 최대한 길게 뻗었다. 천문시계는 매 시마다 20초간 짤막한 쇼가 진행된다. 정각이 되면 먼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인형이 2개의 창에서 나타나며 종을 친다. 두 개의 창문에서 12사도가 등장한다. 지갑을 손에 쥔 유태인, 거울을 보는 사람, 음악을 연주하는 터키인이 뒤따라 등장한다. 죽음 앞에 젊음, 부와 즐거움도 무용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어린 시절 이 시계탑의 유태인 모습을 보며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황금 닭이 ‘꼬끼오’하며 우는데, 이 모습은 모든 이를 웃게 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주로 인간 운명의 부조리를 밀도 있게 고발하는 작품을 후세에 남겼다. 프라하 출생의 유대인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변신’은 섬뜩하리만치 현실을 반영해서 몸서리를 치게 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었던 황금소로(Zlatá ulička)를 걸었다. 아기자기한 길이어서, 프란츠 카프카의 밀도 있는 작품들이 어찌 이런 곳에서 만들어졌는지 의아했다. 프란츠 카프카 외에 밀란 쿤데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작품에서 프라하의 모습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프라하라고 전쟁의 상흔이 없고, 지독한 이념의 대립이 없었을까. 영광이 별빛까지 닿으리란 프라하였기에 여행자들이 찬양하는 낭만과 현실의 괴리감은 좀 더 컸을지 모른다. 독일 작가지만 프라하에서 태어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단편작품인 '두 편의 프라하 이야기'는 가난한 곱사등이 청년인 보후쉬가 등장한다. 그는 '보후쉬 왕'이라는 별명으로 프라하의 콧대 높은 지식인들의 놀림거리다. 체코극장 맞은편 국영 카페에 모인 예술가들과 어울리려고 애쓰는 보후쉬는 냉대 속에서 짧은 생애를 살다가 삶을 마감한다. 또 다른 체코 출신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68년 체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프라하의 봄(체코 민주화 운동)’을 그려낸다. 밀란 쿤데라는 이 책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 억압받던 지식인의 절망과 방황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묘사한다. 주인공인 토마스의 지독한 바람기와 문란함에 가까운 자유로운 성생활은 충격적이나, 그 만큼 효과적으로 지식인-토마스는 의사이다-들의 방황을 대변했다. 파엘로 코엘료의 소설인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어떤가. 프라하에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베로니카가 결국 고리타분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죽기로 결심하는 데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아마도 모차르트의 경쾌함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해야겠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후 프라하에 체류하며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를 작곡했다. 지금도 프라하 시내에서 돈 조반니의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작은 소극장에서는 마리오네트 형식의 인형극이나 연극으로 돈 조반니 작품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프라하의 은은한 밤길을 걸으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물을 채운 투명한 유리잔을 길게 세워놓고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한 뮤지션을 만났다. 은은한 연주소리, 섬세한 감수성…. 또 다른 수백 년이 흘러도 프라하는 예술가들의 도시로 남아 있을 것 같다. 프란츠 카프카부터 일련의 예술 작품들은 알을 깨치고 나오는 과정과 유사하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프라하를 산산히 깨부수고, 증오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사랑했다. 그처럼 어떤 여행은 찬미하고 사랑하는 동시에 그 세계를 깨트릴 줄도 알아야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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