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가 남아 축축한 빨래를 햇빛이 잘 드는 양지에 널어 말린다. 세탁기가 탈수를 했어도 탁탁 털면 여남은 물방울들이 공중으로 튄다. 섬유유연제의 냄새가 산뜻하고, 빨랫줄에 널린 옷들이 산들바람에 흔들린다. 아침 햇살이 투영되는 와이셔츠라든지 티셔츠처럼 잘 빨린 옷을 보면 기분까지 개운해진다. 다음날이 되면 분명 잘 말린 약재처럼 잘 건조되어 있을 거란 확신에 찬다. 약재 냄새가 난다는 건 아니다. 하얀색을 닮아서 때묻기 쉬운 마음도 주기적으로 세탁기에 돌려 빤 다음 햇빛이 잘 드는 옥상에 널어 보송하게 말려야 하는데, 빨래를 하고 나면 마음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새물내가 난다.
지금은 세탁기와 건조기가 상용화되어 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낙들이 아이를 포대로 등에 업은 채 개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겨우내 밀렸던 빨래를 했다. 아이를 어르며 빨래를 손으로 비벼빨거나 매운 시집살이라든지, 어느 집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지, 끝도 없는 수다를 빨랫감 삼아서 빨래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듬잇돌 위에 옷을 올려놓고 다듬이질을 할 때 온집안에 울려퍼지던 경쾌한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맑은 날, 부산의 어느 마을에서 빨랫줄에 걸린 깨끗한 옷들을 봤고, 외국 어느 골목의 허름한 아파트 발코니에 건어물처럼 내걸린 빨래들을 봤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는 아닐지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저마다 약간은 감동적인 서사시가 산들바람에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