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괌의 바다는 두 가지 파란색이었다. 한 가지는 에메랄드빛의 투명한 파란색이요, 한 가지는 짙은 코발트블루의 어두운 파란색이었다. 해변가에서 가까운 쪽에서부터 먼 쪽으로 파란색이 나뉘어졌다. 해변가에서 가까운 쪽이 에메랄드블루, 먼 쪽이 코발트블루.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뛰어들고픈 밝은 에메랄드색 바다 뒤편으로는,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두운 파란색 바다가 있었다. 어두운 파란색 바다같던 어느 시절의 나팔관 이야기.
"아, 보통 자궁외임신은 주위에 비밀로 하려고 하니까요. 달라고 하면 진단서를 주긴 하는데, 알려져서 좋을 것도 없지 않겠어요?"
보험사에 제출할 진단서를 요청하자, 담당 교수는 여러 번 되물었다. 비밀? 알려져서 좋을 것도 없다? 나는 자신에게 자문해야만 했다. 나는 어리둥절 했다. 담당 교수가 알려져서 좋을 것 없잖냐고 의중을 떠보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보험사'라는 단어가 나온 후부터 사설이 길어진 의사의 말투는 피동사가 거슬리는 번역 소설 같았다. 피동사가 하도 많아서 도대체 이 문장의 주체가 누구인지 헷갈려져 버리는 무엇이었다. 그의 문장의 주체는 'I'인가, 'She'인가, 'He'인가? 알려지는 게 좋을 게 없는 주체가 'I',인가, 'She'인가, 'He'인가? 의사는 진단서를 얼른 주지 않고 뭉기적거렸다.
인도의 사원들은 '가르바그리하(Garhaqrha)'가 있다. 사원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신상을 모신 예배소를 가리킨다. 이 말은 '자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누구든 자궁을 통해 들어가고 세상에 나온다' 그런 의미 같았다. 사원 안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차가운 바닥의 기운이 느껴졌다. 자궁은 따뜻해야 하는데, 가르하그리하는 차가웠다. 병실에 입원하기 전부터 한사코 좀 더 기다리겠다고 말했었다. 초음파로 자궁을 들여다보던 의사는 임신 초기 상태라서 무엇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기에 곤란한 낯빛을 했다. 입원 하루째 새벽에 폴대를 끌고 화장실 앞에서 갑작스런 어지럼증을 느끼고 혼절했다. 폴대가 쾅 하고 쓰러져 팔에 꽂혀 있던 수액줄이 당기는 걸 느꼈고, 차가운 바닥의 기운에 옆 얼굴이 부딪히는 걸 느꼈다. 그저 '왜 이러지, 깨야 해, 기다려야 하잖아'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가 지났을까. 당직 간호사들이 달려와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흔들어 깨우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그날, 호흡이 많이 어려웠다. '기다려야 해'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이라도 선명한 아기집을 볼 수 있을 수 있으니까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숨을 몰아쉬며 손으로 몸을 감쌌다. 간호사들의 호출에 달려 온 여의사의 표정은 피곤해보였다. 그 얼굴을 보며 나는 "쓰러진 거 아녜요. 어지러워서 그랬어요. 숨이 차긴 한데 괜찮아요"라며 다시 기다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의사는 말을 삼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녀 역시 기다리는 얼굴로 돌아갔다.
괌에서 남부투어를 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한지 몰랐다. 돌무더기가 많던 해변가에 당도했을 때는 해변 코앞에 굳세게 피어난 나팔꽃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세차게 몸을 떨고 있었다. 나팔꽃은 나팔관을 닮았고, 나팔관은 나팔꽃 같았다. 중학교 시절 생식기관 그림을 보며, 나팔관이라는 단어는 유독 금세 외어졌다. 나팔꽃만 떠올리면 간단한 일이니까. 자궁외임신이란 대개 난자가 통하는 길인 나팔관이 원인이라고 했다. 나팔꽃이 싫어질 것 같은 기분으로, 나팔관을 생각하며 밤을 샜다. 담당 교수가 이른 아침에 와서 검사를 위해 모로 누으라고 했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기가 들어서 그런 거예요.' 의사는 갑자기 내 어깨를 꽉 눌렀다. 비명이 새어나왔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봐요'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깨가 아픈 건 복강에 피가 차서 나오는 증상이라고 했다. 다시 어깨를 눌렀고 나는 악을 썼다. 더 이상은 아무리 해도 참고 기다릴 수 없음을 시인해야만 했다. 나는 고통 따위 꾹 참고 아기집을 기다리지 못하는 자신이 분해서 울고 있었다.
의사는 수술날 나팔관이 두 개이니, 나팔관 한 개를 제거하자고 했었다.그 말은 임신 가능성이 거의 2분의 1로 줄어든다는 의미였다. 병실 침대에 누워 이동하며 신랑에게 "의사가 나팔관에 특별한 문제가 발견된 게 아닌데 제거하자고 말하면 내가 제거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해줘"라고 당부했다. 이 말은 나팔관을 보존하는 대신, 자궁외임신의 20%에 달하는 재발 가능성을 감수하겠다는 뜻이었다. 마취가 풀린 후에는 수술실의 한기와 싸워야 했다. 소독약이 상처 부위에 닿는 차가운 느낌은 소름끼쳤다. 더 늦었다면 복강 내 과다출혈로 환자 목숨이 위험했다는 말을 들었다. 목숨, 위험이라는 단어들은 잘 와닿지 않아서 허공을 맴돌았다.
괌 남부의 메리조부두에는 나무 데크가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었다. 나는 거의 떨어질 지경이 될 정도로 끄트머리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았다. 날씨가 흐리기 때문인지, 바닷물은 검푸른 색이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덕지덕지 달라붙었고, 흰 치마가 나부꼈다. 메리조부두의 해변가에서는 어린 닭이 어미닭-어쩌면 아비닭-의 뒤를 졸졸 쫓고 있었다. 퇴원 후 상처는 잘 아물었고, 짚히는 데가 있었다. 난임 검사의 일종인 난관조영술, 그게 원인 같았다.
양가 어른들이 채근하기 전부터, 결혼 전부터 아이를 가장 원한 건 바로 나 자신.
퇴원 후에 난임 병원에 다시 찾아갔다. "난관조영술이 원인인 것 같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1년 가까이 내 배란일, 생리일을 체크해 온 데이터가 여의사의 컴퓨터 화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난임 전문 의사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멈춰 있었다. 난관조영술을 한 날 임신가능성이 높았음은 그녀의 데이터가 확인해주고 있었다. 난관조영술과 자궁외임신 사이에 연관이 없다고 누구도 확신하지도 반박하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난관조영술은 임신에 영향없다고 하셨죠. 오히려 나팔관이 깨끗해지기 때문에 임신 확률을 높여준다고 했어요." 나는 몹시 목이 말랐다. 의사는 "그날 임신 가능성이 높아보이긴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얼버무렸다. 나는 침을 삼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음 번에 저처럼 난관조영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혹시 모르니, 난관조영술을 한 며칠은 피하라고 권해주세요. 저처럼 이런 경우 없게요." 끝내 입술이 떨렸다. 의료 책임을 하나부터 열까지 들추고 따질 만한 기운은 없었다. 살을 뚫는 것 같던 난관조영술은 나의 임신 확률을 높여줬고, 다시 앗아갔었다. 지난 시절의 파란 자궁, 그리고 파란 나팔관 두 개. 수평선이 보이는 파란색 바다, 바람에 부대끼는 붉은 나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