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
"베로베로는 그만 잊어버리자."
아미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재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귀염성 있으니까 어딜가든 예쁨 받고 살 거야."
아미의 얼굴 위로 기름 방울이 튀어서 따끔했다. 그녀는 베로베로를 잃어버린 게 따끔했고, 얼굴이 따끔거렸고, 눈가가 따끔거렸다. 베로베로가 어딘가에서 귀여움 받고 살고 있으리란 긍정 회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베로베로는 어디 있을까.
베로베로를 데려간 뒤에, 창고 안을 10바퀴 정도까지 돌며 서성이길 반복하고 있었다. 창고의 위치는 제법 후미진 구석에 숨어 있어서 범속하게 사람들이 드나들 만한 곳은 아니었다. 보도블록은 곳곳이 패어 있어서 발 아래를 보고 걷지 않다간 정비되지 않은 틈새에 걸려 넘어지기 쉬웠다. 인근에 주차된 차들도 폐차 혹은 침수 차로 여겨질 만큼 멀끔한 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지 미심쩍어 보였다.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만이 오갔는데, 그들이 걸을 때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눈두덩이가 음푹하게 패어 음영이 두드러졌다.
"456413678, 456413678"
나는 작게 속삭이며 살찐 개를 쳐다봤다.
"어째서.."
머리를 세게 긁적거렸다. 성가셨다. 귀찮았다. 황당했다. 하지만 내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날도 아미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자체 반사판처럼 반짝이는 햇빛을 튕겨내는 그녀의 윤기나는 머릿결을 감상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별안간 베로베로가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는 물질이 되어 공중을 날아다니던 456413678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꿀꺽!
"아니, 도대체 제대로 된 비행 능력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간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은 더욱이 할 수 없었다- 급한 대로 베로베로를 잡아왔지만 어찌할 바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456413678이 똥으로 배설될 때까지 기다려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456413678이라면 모를까, 그가 근무하는 본청으로 연락할 방도를 알지 못했다. 나는 스쿼트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민하는 동안, 베로베로는 낯선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털 많은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려 흰자위만 번득거렸다.
나의 그녀, 아미는 이 뒤룩뒤룩 살찐 개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이토록 애타게 개가 똥을 싸길 기다리게 될 줄이야. 오래된 생애 속에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베로베로가 작은 입소리만 내어도 배변을 위해 힘을 주는 건가 싶어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노릇이라니! 베로베로는 주는 대로 사료를 먹고, 변비에 좋은 바나나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뒤 뱃살을 바닥에 깔고 누워 있었다. 456413678은 베로베로의 뱃속에서 바나나와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인가. 아미만 아니었다면, 베로베로를 단칼에 베어버렸을지 모른다. 456413678이 걱정되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저녁 8시쯤, 드디어 저녁 산책길에 베로베로가 수풀 사이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 개의 뒤태를 보며 거의 감탄사를 연발할 뻔 했다. 예상대로 흘러갈 줄 알았지만 456413678은 내가 코를 잡고 뒤적거린 그곳에(?) 없었다. 그는 바로 옆에서 허리가 꺾어지도록 웃고 있었다.
"하하, 자네를 보고 있으면 이런 희극이 없다니깐!!"
"어떻게?"
"어떻게 되긴. 이 녀석 코로 곧바로 나왔는데 자네가 하는 꼴이 너무 우스워서 구경을 좀 했네. 너무 웃었더니 오랜만에 눈물이 다 나는군."
망연자실하게 456413678을 바라보면서, 분노감을 억누르려고 애를 썼다. 베로베로는 정성껏 먹을 걸 갖다바쳤기 때문인지 그새 정이 들어서 애교를 부리며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보채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마음만 먹어왔던 일을 실행해야 할 것 같았다. 456413678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