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을 만큼 초콜릿을 배불리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전에 살던 답답했던 아파트도 싫었다. 베로베로는 뛰어다니기에 안성맞춤인 이 대형 아파트에 눌러 앉기로 작정을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되도록 대소변은 강호가 깔아준 곳에서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감질나게 이러지 마. 주려면 주든가, 말려거든 말든지. 휴."
"무슨 소리야. 누가 감질나게 했다고 그래?"
능글맞은 목소리로 강호가 아미를 골리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예전보다 살집이 더 오른 베로베로가 카페트처럼 늘어져 안겨 있었다. 베로베로가 주먹 하나쯤 들어갈 만하게 입을 벌려 크게 하품을 하는 동안 아미는 베로베로를 낚아채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뛰다말고 뒤를 돌아서 강호에게 건강한 혈색의 혓바닥을 낼름 보이고는 도망쳐 버렸다. 3년간 동거를 하며 함께 키운 반려견의 양육자가 누가 될지 법원을 통해 판결을 받는 대신 이렇게 얼렁뚱땅 결정되었다.
아미는 결국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켰다. 갓난아이만한 무게로 뒤룩뒤룩 살찐 베로베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눈을 끔벅거렸다. 아미의 눈이 맑은 호수처럼 반짝이다가 분수처럼 눈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걸음은 느려졌고, 베로베로도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늦추었다.
기절이라도 한 듯 잠에 빠져 들었다. 폭격기 소리, 아니, 어머니의 잔소리에 잠이 달아났다. 잠에서 깬 그녀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홈쇼핑을 보고 산 이불은 열흘만에 박음질 부분이 튿어져 세탁기 속에 온통 솜이 가득했다. 아미의 어머니는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은 채 출근한 상태였다. 적어도 아흐레 동안은 솜이 빵빵했고, 구름처럼 포근함을 안겨주던 걸 감사해야 할까. 아미는 잠시 고민했다. 전날 베로베로가 문제의 이불에 소변을 했을 때 치밀던 분노와는 영판 다른 감정이었다. 아니다. 그건 어제 일이 아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베로베로를 잃어버린 것이다. 침대의 스프링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마치 불혹을 넘긴 인간처럼 신음하며 관절을 삐거덕댔다. 베로베로를 잃어버리고 나서 어머니에게 들은 질책을 잊지 못했다. 심성이 약해서라기 보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들이 연이어 터지던 중에 개까지 잃어버리자 어머니의 질책은 도를 지나칠 정도였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요즘의 아미를 두고 있는 말 같았다. 아미는 그때 만난 사내를 떠올리며 이빠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녀가 베로베로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 사내가 베로베로를 데려가 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미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네가 잘 지켜봤으며 그런 일이 생겼겠냐'고 소리를 질렀다. '간수 못하는 게 더 나빠'라는 습관적인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미는 웃통을 벗으며 와이셔츠를 살짝 걷어 자신의 팔에 난 상처를 바라보았다. 큰 폭으로 꿰매진 상처였다. 그 상처마저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해 '간수 못하는 게 더 나빠'라고 항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미는 머리를 흔들어 상처가 난 영문을 기억해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꾸역꾸역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저녁엔 외식을 하는데, 아미의 어머니는 기름이 몇 방울이 튀든 불판 가까이에서 젓가락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아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풀기 어려운 난제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의 인중에는 불판의 기름 빼는 도랑처럼 깊은 주름이 패여 무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넌 기집애가 고등학생때 체조를 계속할 수 있을까 싶게 고기를 좋아하더니."
"내가?"
아미의 기억 속에는 자신이 그렇게 고기를 좋아했던 시절이 없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굽는데 집중했다. 아미는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자신이 고기를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토하는 모습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한동안 거식증을 앓았었다. 그녀의 모친은 그걸 잊어버린 걸까?아니면 아미가 얘기를 한 적이 없었던 걸까?
고깃집의 유리문이 열리며 찬바람이 훅 끼쳐들어왔고, 패딩에 바람이 남겨놓은 비린내가 나는 무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문이 열린 틈으로 가랑비 내리는 소리가 명랑하게 커졌다가 문이 닫히며 소리 역시 사그라들었다. 빗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들렸고, 쓸쓸하면서도 명랑한 기분이 들게 했다. 비는 저만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저만의 음을 가지고 있다. 하프의 선율은 비의 것이었다. 하지만 아미는 아니었다. 비마저도 아미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 깊숙이 내재된 좌초된 이상이 저 빗소리에 고기에서 흘러나온 기름처럼, 흘러들어갔다. 아미는 자신의 몸에 알 수 없는 한기가 들자 모처럼 입은 흰색 가디건을 몸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팔에 닭살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