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는 울지 않는다11

천번 만번의, 이그드라실

by 호림

푸른 사철나무가 서 있었다. 아홉 세계를 연결하는 이그드라실처럼 장대했다. 누군가 울고 있었는데 왜 우는질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소리는 가녀렸지만 비파 소리처럼 공기를 뚫듯이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그녀는 내게 스케치북에서 아무렇게나 뜯어내어 동그란 고리 부분이 뜯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종이의 한쪽 면이 접혀 있었는데, 그 부분을 펼쳤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 얼마 동안 울었는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시간이 멈췄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접힌 부분에 비밀스럽게 감춰진 그림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사람이 한 명 그려져 있었다. 그게 누군지 알지도 못했지만 눈물이 봇물처럼 터졌고, 시간은 재개발 구역에 아파트가 착공하기 전의 상태처럼 거대한 구덩이가 생성되었다. 그 구덩이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구분 없이 융합되어 버렸다. 시간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인지, 공간이 그러한지조차 불투명했다. 그림 속에서는 그녀가 나였고, 내가 그녀였다. 또 다시 분리되어 떠나간다. 잠시잠깐 닿았다가, 또 다시 스케치북처럼 뜯어지고 이탈되어 나아간다.위그드라실의 관문 앞에서 말이다(물론 확실하진 않다. 아마도 거대한 구덩이 때문에). 그 나무의 이름이 위그드라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름이 무엇인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아주 많은 생애 동안 기억도 다 나지 않을 정도로 정어리떼처럼 많은 이름이 부여되다가 보면, 이름의 고유성이 흐려지게 된다. 저 나무도 정어리떼처럼 많은 이름으로 불릴 거란 걸 알 수 있을 뿐이다.


스케치북이 뜯기듯, 북북 소리를 내며 심장이 반으로 찢어지는 감각이 온몸을 관통했다. 귀가 찢어질 듯 울려퍼지는 구급차 소리도 들리지 않아도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감각으로 알아채고 있었지만 말초에서 전달되는 너무도 사실적인 감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매번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한번이었는지, 수백 번 혹은 수천 번, 수만 번의 리플레이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물리적으로 실제로 진행이 되는 건지, 분명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초록색 기운이 어른거렸고, 화약 냄새 보단 따뜻한 불의 냄새가 코끝에 진동했다.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 잠시 동안 가벼운 어지럼을 느끼며 먼 하늘을 바라봤다. 아이의 눈망울처럼 별이 총총한 날 밤이었다. 그렇게 맑은 하늘에는 별똥별을 더욱 보기 힘들 것 같았다. 짐을 실은 나귀가 소리 나게 제자리걸음을 하며 푸루루- 잠을 설쳤다. 불쏘시개를 만들어 모닥불 속을 공연히 뒤적였다. 눈송이 같은 불꽃이 일었다. 아른거리는 불길을 바라보며 눈꺼풀이 깜박거렸다. 얼마나 잠들었는지 불꽃이 튀는 소리에 문득 깨어나 눈을 비볐다. 달을 닮은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는 모닥불의 열기가 번져 사내아이의 옆모습이 붉었다. 붉은 이마에는 싸늘한 달빛이 서렸다.


그 아이는 "형아"라고 했다. 나에게. 그 생은 슬픈 생애 중에서도 가장 슬펐던 거 같다. 나는 아이의 부름에 즉시 눈시울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머리 끝이 쭈뼛 서도록 울지 않기 위해 안간힘으로 버텼다. 본능적으로, 아이가 겁을 먹지 않게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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