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아
“형아.”
아우를 옆에 뉘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의 어미이기도 했고, 형이기도 했다. 힘없는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렀지만 공기 속으로 흩어져버렸다. 입을 앙 다물더니, 다 터져서 허옇게 된 메마른 입에 힘을 주며 다시 말을 잇는다.
“집에는 언제 가오?”
“내도 모르디.”
밝은 북극성의 별빛에 잠시 슬픔이 어렸다. 아우는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노랗고 은은한 빛을 발하는 고온 덩어리를 바라봤다. 아우의 눈동자에는 둥근 보름달이 눈물방울처럼 맺히었다. 수풀 속에서 자두나무가, 살구나무가 확 자라날 듯했다. 돌아갈 곳을 그리워하는 것은 칠흑의 어둠 속에서 의심쩍은 자두나무와 살구나무가 자라는 일이었다. 배가 고프니, 그 모양이다. 발갛지만 노란빛이 도는 자두 한 알을 떠올리자 싱싱한 과즙향이 금세 입안을 감돌았다. 아우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소금 알갱이들이 떨어져 내릴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눈앞이 흐려졌다. 이대로 울어버린다면 아우 앞에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꼴이다. 나오려던 눈물을 꼭 붙들었다. 딴청을 피우며 날벌레 잡는 시늉을 했다. 느린 보폭으로 세력을 모으는 구름덩어리들은 비를 퍼부을지 말지 머뭇거리듯 불안하게 하늘을 흘러 다녔다.
백설기에 묻은 흙을 꼼꼼히 떨어내 흙이 덜 묻은 부분을 떼어 아우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우가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꼭 봄철에 짹짹 거리며 먹이를 기다리는 어린 제비 같았다. 그런 반면에 내가 먹을 것은 아우에게 먹일 것도 아니니, 흙 알갱이가 있으나마나 입에 밀어 넣어 씹었다. 깔깔한 알갱이가 잇새로 씹혔다. ‘먹자.’ 일순간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흙 묻은 백설기가 퍽 맛있다. 뽀얀 백설기가 어머니가 지어주신 따뜻한 흰 쌀밥이 되어 있었다. 눈앞이 흐려져 그리 보이는 게다. 목이 메이는 것은 목구멍으로 흙 알갱이가 넘어가는 느낌이 생생하기 때문인 게다. 무심히 빛나는 저 달의 어딘가에는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희망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저기 있는 별 보여?”
어른들의 말은 대개 믿을만한 것이 못 됨을 알고 있었지만 어버이의 말만은 철석같이 믿었다. 곧 데리러 오겠노라 했으니, 반드시 데리러 올 게다.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린 형제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는지.
여름 밤의 건듯 부는 바람결이 부드럽게 귓바퀴를 돌아 머리카락을 스쳤다. 동생을 품에 안으며 무수하게 펼쳐진 별밭을 올려다보았다. 아우의 작은 호흡이 볼을 간질였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다 자란 키만큼 저 하늘도 가까워지리라. 저 하늘만큼 자라서, 이 아이처럼 연약한 존재들을 보듬어줘야지, 생각하다간 시나브로 얼굴이 붉어졌다. 청아한 빛을 발하는 북극성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끄러운 마음이 우꾼했다. 꾀죄죄한 손으로 연약한 빛을 내는 별 하나를 가리켰다.
“저 별, 저건 별환이 별이야.”
꼬질꼬질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별환의 눈빛이 총명하게 빛났다. 길을 잃고 땅에 내려온 별 하나가 별환의 눈 속에 잠시 거처하는 듯했다. 북극성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별환이 옆에 있는 저 큰 별이 보여? 그건 우리 오마니별이니까. 오마니는 별환이 별이 보고 싶어서 하늘나라로 간 거야.”
영롱한 별들 속에서 숨소리가 들릴 듯하다. 별환은 왈칵 울어버릴 듯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 아이는, 별의 이름으로 태어난 내 아우는, 연약한 숨결의 그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늘의 작은 별로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났다.
“오마니 보고 싶어.”
별환은 용케 참는가 싶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의 울음은 늑대의 울음 소리, 부엉이의 울음 소리와 뒤섞여 야행성 동물의 울음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면 저 늑대도, 부엉이도, 많은 야행성 짐승들은 밤에 제 어미가 보고 싶어서 그렇게 우는 것일까. 나 역시 왈칵 쏟아질 거 같은 눈물을 가까스로 억눌러 참았다. 어머니에게 남자는 우는 게 아니라고 배웠으니까. 형은 아우를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 생사조차 불분명한 부모가 보고 싶어 애가 탔고 그립고 두려웠다. “오늘 밤은 동생 데리고 숨어 있다가 오너라” 말하셨다. 어머니는 떨리는 음성으로 내 손을 어찌나 세게 쥐셨는지 손을 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사안의 위중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그 길로 달환을 데리고 숲으로 달아났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무언가로부터 영원히 달음박질을 쳤다. 산허리에서 내가 다니던 학교가 화염에 휩싸인 모습을 보고서 그제야 저 화염으로부터 도망치라고 손을 꼭 쥐고 얘기하신 걸까 싶었을 뿐이다. 나는 어머니가 그랬듯 별환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있었고, 별환은 내 손아귀에서 제 손을 빼려고 악착같이 힘을 주고 있었다.
"아퍼"
퍼뜩 정신이 들었고, 별환의 손을 놓아주었다. 너를 지키려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을에 남아 있는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가족과 동무들이 걱정 되어 뛰어가고 싶은 마음이 우꾼했다.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무엇이냐면, 가족과 헤어지게 될 수도 있으리란 불안감을 항상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밤 자고 일어나면 ‘여기서 사람 죽었다, 저기서 사람 죽었다’며 흉흉한 말이 돌던 때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