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유키마쯔리
가루눈이 흩날린다. 삿포로 눈 축제(Sapporo Snow Festival)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신치토세 공항과 연결된 JR로 갈아타서 삿포로 역으로 향했다. 삿포로역에 도착하길 기다리며 유리창에 더운 입김을 ‘호~’ 불었다. 김이 서리자, ‘さっぽろ(삿포로)’라고 끄적끄적 글씨를 썼다. 눈이 난분분하게 내리는 삿포로.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드느라, 주머니 밖에 내어놓은 손가락 끝이 시리다. 삿포로 눈 축제는 ‘유키 마쯔리(雪祭り)’라고도 불린다. 적설량이 많은 일본 홋카이도의 겨울을 대표하는 눈 축제이다. 세계 4대 겨울축제로 꼽힌다.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나니 밤 9시였다. 축제는 이미 끝난 시간인 걸 알았지만 일행을 재촉해 길을 나섰다. 걸어서 오도리 공원에 당도하니 이미 사위는 소등 상태라서 어두컴컴했다. 아쉬운 마음에 오도리 공원에 일렬로 길게 늘어선 눈 조각들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야심한 시각, 조각 작품들이 수호자처럼 서 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길가에 쌓인 하얀 눈에 반사되어 주변은 한층 밝아보였다. 에스키모 어에서는 눈의 이름이 무려 20여 가지라고 한다.
내리고 있는 눈(qanik)
음료수용 눈(aniu)
쌓여 있는 눈(aput)
고운 눈(pukak)
눈보라(piirtuq)
이글루를 만드는 잘라낸 눈의 덩어리(quviq)
바람에 밀려가고 있는 눈(piqsirpoq)
알파벳을 따라읽으며, 어떻게 발음해야할지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눈 종류가 있을 수 있을까. 극지방에서 나는 '음료수용 눈(aniu)'이란 대체 어떤 맛이 날까.
고향에선 눈밭을 걸으면 하얀 소금이나 설탕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새벽에 집을 나가면 문 밖이 새하얘.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빛을 반사해서 희뿌연 빛이 눈 위로 펼쳐지는 그런 거 본 적 있어? 얼마나 예쁜데 그게, 아무도 아직 밟지 않은 눈이.” 친구가 말했다. 16세였다. ‘눈이 반짝거린다고?’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는 터였다. 가만히 그 말의 문맥을 주의해서 살펴보며 상상해 보는 게 다였다. 막연히, 아주 예쁘리란 것만은 알았다. 지금 그 친구가 곁에 있다면 전해주고 싶었다. 삿포로의 밤 깊은 눈길을 걸으며, 이제는 그 때의 네 말을 이해할 수 있노라고. 축제 인파가 떠난 사이 소복소복 쌓인 눈은 다시금 순결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썰물처럼 축제 인파가 자리를 떠난 밤, 가로등 불빛을 받는 하얀 눈밭이 고와서였던지, 아니면 이미 소등된 축제 현장이 못내 아쉬웠던지, 에라, 모르겠다, 눈 위에 손발을 뻗고 대자로 누워 버렸다. 눈밭은 차갑지도 않고, 축축하지도 않고, 포근한 이불처럼 몸을 감싸줬다. 천진했던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사이, 잊어버렸던 눈의 한기가 살갗에 오소소 오르기 시작할 때쯤 다음 날을 기약하며 숙소로 뽀득뽀득-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