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날

칭다오 소어산공원

by 호림

봄비, 꽃비, 초록비/ 노래로 내리는 비/ 우산도 쓰지 않고/ 너를 보러 나왔는데/ 그렇게 살짝 나를 비켜가면 어떻게 하니?/ 그렇게 가만가만 속삭이면 어떻게 알아듣니?/ 늘, 그리운 어릴적 친구처럼/ 얘, 나는 너를 좋아한단다 <봄비에게(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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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며, 벚꽃이 우수수 떨어져 바닥에 벚꽃잎들이 흩어져 있다. 빗물에 목련의 잎사귀도 떨어지니 서운한 마음이 왈칵 들다가도 가물다가 내리는 비는 반갑다. 칭다오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가 소어산(샤오위샨)공원에 간 것이다. 비를 뿌리는 날씨였지만, 소어산에 갈 때쯤엔 다행히 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계단 위에 금빛 해태 두 마리가 위용 있게 서 있다. 부드러운 이슬비가 내리면 풀밭은 한층 푸르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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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그친 비.

빗물을 머금은 꽃들이 더욱 초롱초롱하니 맑아보인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독일식 가옥들의 지붕이 더욱 붉게 보인다. 사방팔방이 빨간 지붕들이다. 체코 프라하의 붉은 가옥들을 연상시킨다. 국경절 기간이기에 범람하는 중국 국기의 붉은빛 속에 중화사상이 대지에 스민다. 비가 오던 날이라서 한산해서 또 좋다. 과거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칭다오에 침입한 독일에서 칭다오를 독일인들의 조계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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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지란, 외국인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리는 구역을 뜻한다. 독일식 가옥이 많은 이유이다. 칭다오에서 독일의 영향을 받은 칭다오 맥주가 발달한 이유도 칭다오가 독일의 조계지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유럽'이라고 할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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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건물이 없어서 전망이 탁 트여 있는데다 비가 온 뒤라서 공기마저 상쾌하다. 은발의 할머니 한 분이 정자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전망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는 붉은색 지붕너머 지나온 삶의 파노라마가 함께 펼쳐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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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어산공원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연대(年代) 커피점’은 세 평 남짓 작은 커피숍이다. 테이블 두 개뿐이다. 소어산 공원 앞의 유일한 커피숍이기 때문인지 아기자기한 분위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사람 손님도, 고양이 손님도 찾는 곳이다. 고양이들이 드나드니, 고양이 카페에 온 것 같다. 커피를 만들던 여성에게 "니 더 마오?(당신의 고양이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공 리 더(공원 고양이)"라고 답한다. 고양이들에게 밥만 챙겨주고 있단다. 소어산공원 둘러보고 내려와 비가 온 뒤 스산해진 기후에 따끈한 커피가 속을 달래준다. 비가 오는 날은 왠지 활동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기분도 처지기 쉽다. 창밖의 어둑한 풍경을 바라보며 봄비가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용한 음악에 문득 눈가엔 눈물이 스민다. 반가운 손님처럼 내리는 봄비들은 미세먼지도 씻겨주고 공기도 한결 맑게 해주는데 이다지도 사소해빠진 우울감까지 씻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장마가 벼의 생장에는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장마에 대한 만반의 대비도 필요하겠지만 한편으론 장마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주식이 바뀌었을 거란다. 봄비도, 여름비도 참 좋다. 가을비나 겨울비는 나는 어쩐지 추워서 덜 좋다.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음악이 흐르는 그 카페엔 초콜렛색 물감으로

빗방울 그려진 그 가로등불 아랜 보라색 물감으로

세상 사람 모두 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마치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욕심 많은 사람들 얼굴 찌푸린 사람들

마치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김현식, 권인하, 강인원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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