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아무리 고심해도 일정은 스위스 로잔, 베른, 루체른 어디로도 루트가 연결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삐걱거린 여정이 이렇게 될 줄 일찌감치 예상 못한 것도 아니었다. 이채로운 파란 눈이 잠시 내 눈길을 피하더니 불만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스위스에 가지 말고, 여기서 나와 루브르에 가자.” 그는 말했다. 역무원이던 안토니오는 매표소 너머에서 유레일패스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진 나를, 다시 채근했다. “루브르라니까!”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눈을 빤히 바라보는구나!’ 안토니오의 눈길이 그러했다. 여행은 ‘예측불허’이다.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며 여행의 결을 만들어 나간다. 인생 역시 그러하다. 어떤 색의 실을 선택해서 어느 시점에 얼마나 팽팽하게, 얼마나 느슨하게 인생을 짜나갈지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다. 그게 묘미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 놓쳐버리기 일쑤였던 삶의 주도권을 여행을 통해 회복하려고 떠나는지 모른다. 역무원이던 안토니오는 한국 여자의 입에서 “Okay”라는 말이 나오자, 그길로 동료에게 프랑스어로 간단한 말을 전한 뒤 일터를 나섰다. 검은 잠바를 걸친 그의 키는 훤칠했다. 가을의 거리와 루브르는 광합성이 필요한 무채색을 띠었다. 키가 큰 안토니오의 발걸음을 쫓아가느라 종종걸음을 걷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안토니오의 뒤를 쫓아 루브르에 와있었다.
세계적으로 이름 난 작품들을 두루 살펴보고, 루브르를 나서기 전에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동안 우뚝 서 있었다.
안토니오의 말이 하도 터무니없어서 한국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이 튀어나올 듯 했다. 안토니오의 엉뚱한 말에 그만 웃음이 났다. 이제 그는 자신의 양 볼을 가리키며, 프랑스식으로 양쪽 볼에 가볍게 뽀뽀하는 인사법인 '비쥬(bisou)'를 하자고 청했다. 멀대처럼 키가 큰 안토니오가 고개를 숙여 내 한쪽 볼에 살짝 뽀뽀를 하더니, 아뿔싸, 내 입술을 향해 얼굴을 돌진했다. 가까스로 상황을 피하긴 했지만 그의 입술이 입가에 닿은 불쾌한 느낌에 손으로 슥슥 문질렀다. 가자미눈을 뜨고 안토니오를 냅다 쏘아봤다. 그는 아랑곳없이 능청스럽게 어깨만 으쓱댄다. 놀랐지만 루브르와, 프랑스와, 유리 피라미드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의외로 너그러운 웃음이 터진다. 리옹역까지 데려다준다는 그를 만류했다. 대신, 낙엽이 구르고, 가을이 출렁이는 파리의 거리를 홀로 걸었다.
저는 거리를 거닐고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아무에게나 인사하고 싶었어요
그 아무나가 당신이었고
나는 당신에게 마구 말을 걸었어요
당신과 친해지는 것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해가 맑든 비가 오든
정오든 자정이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있어요
샹젤리제 거리에는
<Les Champs Elysees(오 샹젤리제)> 샹송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