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짜오프라야강 야경. 방콕의 야경 포인트는 새벽 사원이라고 불리는 '왓 아룬 사원'과 짜오프라야강이다. 숙소 겸 바도 같이 있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꼬마전구들이, 작은 반딧불이들처럼 희미하게 반짝인다. 철제계단을 타고 더데크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전구들이 빛을 반짝이며 '밤에 오길 잘했지?' 말을 거는 듯했다. 강 건너 왓아룬 사원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물결 위로 황홀하게 일렁이는, 왓아룬 사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말없이 고요하다. 강이 아니라, 청동거울이 불빛들을 반사시키는 것만 같다.
'보수 공사' 라는 말, 실망을 동반시키는 말이다.
단골 레스토랑에 갔는데 리모델링 중일 때, 유명한 맛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마침 보수 공사를 하거나, '새벽 사원'이라고 불리는 방콕 왓아룬 사원이 보수 공사 중일 때 실망감은 기대감이 차지했던 지위를 재빨리 앗아버린다. 완벽하게 실망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장소가 없어진 것도 아니며 더 다듬어진 모습으로, 언젠가 다시 볼 수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여지가 '보수 공사'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역시 가끔은 보수 공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요할 땐 '지금은 보수 공사 중입니다'라고 푯말을 걸어놓고 늘 뒤켠에 제쳐놨던 자신을 먼저 살펴주고 보듬어주는 그런 시간. '너 잘 살고 있어. 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다 알잖아.' 알아주는 시간.
실망했다가 문득, 보수공사 때문에 얼기설기 골조가 드러난 왓아룬 사원의 모습이 화려한 맛은 없지만 싫지 않았다. 창백한 빛이 감돌아서 한층 청초해보였다. 어느 걸작이 완성되기 전 화가의 거친 손길로 슥슥 그려나간 스케치 작품을 엿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마음 속에 일어나는 설익은 생각들도 마음에 든다. 이따금 인생도 보수공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니 이제는 몹시 너그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이런 상태는 아마도 식전에 들이켠 와인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동행한 동생은 때마침 그 레스토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서 "태국 간 건 알았는데 이렇게 만날 줄 몰랐네"라며 목소리가 한층 들떴고, 와인은 쓴맛이 났고, 실내는 조도가 낮아서 음식마저 칙칙해보였다. 그렇게 그날 음식값 대신 야경 값을 치르고 레스토랑을 나섰다. 떠나기 전에 철제 계단에 몸을 바짝 붙이고, 짜오프라야강에 카메라를 최대한 가까이 들이밀었다. 보수공사가 끝난 왓아룬 사원에 다시 갔을 때는 지난 날의 실망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만, 찬란하게 반짝이는 왓아룬의 모습에서 지난 어느 날의 청초해보이던 왓아룬을 더 이상 볼 수 없단 게 한편으로 아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