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바다는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처럼 파도를 몰아치며 몸을 뒤틀었다. 옥계해수욕장의 안전요원은 태풍 영향으로 입수를 금지한다고 떠들어 튜브 등등 준비해 온 물놀이 용품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저녁까지 여기 있다가 가면 좋겠어.”
‘잘못 들은 걸까?’ 나무 그늘에 있는 솔밭에 단출하게 돗자리를 깔고서 누운 채로 그가 말했다. 모히또를 마시며 몰디브의 신비로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볼 때도 그런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11시간 비행을 해서 당도한 몰디브가 아니라, 우리가 묵었던 지상 최대 규모 초호화 독채 풀빌라가 아니라 그에겐 단지 그늘이 드리운 두 평 남짓 휴식이면 충분했다. 성난 파도는 집채만큼 몸집을 불리며 모래사장을 타격했고, 작달비 대신 햇살은 싱그러운 나뭇잎 사이로 여지없이 흩어졌다. 두 나무 사이에 깐 돗자리에 만족스럽게 드러누운 사내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어찌됐든, 웃음이 번졌다. 올여름의 ‘신선놀음’이 몰디브가 아니라 여기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은 강풍이 불고 파도는 거칠었지만, 비는 오지 않는 그런 날씨였다. 그것으로 족했다.
파도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카츠시카 호쿠사이
일본 에도시대의 우키요에 화가인 카츠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파도 그림이다.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 작품들은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 왼쪽 면을 가득 채우는 집채만한 파도가 지금 막 표류하는 세 척의 배를 덥칠 듯하다. 오른쪽의 여백은 파도에서 느껴지는 역동성과 긴박감과 대비되며, 그림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과연 '여백의 미'라고 해야할까. 그림 속의 빈 공간이야말로 이 작품 특유의 동양적인 '정중동'을 느끼게 해주는 매력이다. 그림의 중앙을 비켜난 후지산은 성난 바다의 높은 포효에 무심한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의 인생 역시 때로 잔잔한 파도가 기분 좋게 밀려오기도 하고, 큰 파도에 그만 휩쓸려 큰 시련을 겪기도 한다. 세 척의 배는, 이 파도를 무사히 빠져나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