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삿포로
기차의 창가자리에 앉아서 상념에 잠긴 날이 있는지? 비행기를 타면 창가자리를 탐냈고,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탈 때 창가자리를 탐냈다. 그건 분명히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었다. 어릴 적 열차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부모님이 잘 삶은 계란 껍질을 낱낱이 까서 건네줄 때부터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먹던 비닐봉지 속 삶은 계란 맛이 좋아서, 몸 어느 한구석에 각인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을 복기하는 것일까, 그때의 계란 맛을 복기하는 것일까. 철커덕철커덕 묵직한 고철덩어리는 상념과 상관없이 제 갈길로 내달린다. 기차가 내는 리듬이 있고 창밖의 풍경이 있다면 몇 시간을 봐도 도무지 질릴 일이 없다.
기차는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와 딴판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적당히 빠르면서, 적당히 느리고, 적당히 구식이지만 구닥다리는 아니다. 기차의 덜컹거림은 잠든 이의 고른 숨소리처럼 즐거운 소음아니던가. 열차는 기찻길과 마찰음을 내며 나아가고, 창밖의 바뀌는 풍경을 바라볼 때 불필요한 생각들도 풍경따라서 휙휙 바뀐다. 창밖을 하릴없이 바라보거나 엄마가 잘 삶은 계란 톡 까서 탄산음료랑 같이 내밀어주던 그때 그 맛이 입안에 맴돈다.
적설량이 많은 삿포로에 갈 때는 열차 문간에 기대어 서서 하얗게 눈으로 덮인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인도에서는 같은 자리에 앉게 된 인도인 가족들의 음식을 맨손으로 나눠 먹기도 했고, 풍경 스케치를 하고 있노라면 눈이 동그란 아이들이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안에서는 비록 언어와 태어난 나라가 다르지만 호의에 어린 눈빛들이 마주보는 일 외엔 아무 위험도 도사리지 않았다. 장장 6시간 동안 새벽 기차를 타고 정동진의 일출을 보러 친구와 기차 안에 스민 찬 새벽 공기를 마주치던 추억, 부모님 몰래 친구는 물론 동생까지 데리고 대구 여행을 갔다가 걸린 적도 있다. 기차역에서 하염없이 자식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나란히 플랫폼에 서 있던 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떤 날은 단지 철커덩철커덩 거리며 떠나는 열차가 마냥 타고 싶어서 어딘가로 갈만한 곳이 없나 고민할 때가 있다. 내 아이가 자라거든, 기차가 좀 느려도 좋으니 삶은 계란을 까서 먹을 수 있는 '구식 기차'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