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loresprit Jan 26. 2016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곳,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4막

2015년 8월 24일, 로마 황제가 사랑한 곳 스플리트



이제 세 번째 예정지인 스플리트 Split로 이동한다.

시간이 어긋난 탓으로 콜벤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포기하고, 버스 이동을 위해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지는 동안 변화무쌍한 플리트비체의 날씨는 잠시 시원한 비를 뿌리고 지나갔다.

기다리던 버스에 오르자 한눈에도 오래되고 냄새나는 로컬버스의 진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이곳 크로아티아는 도시와 지역 간을 연결해 주는 운송이 기차보다는 주로 버스에 의존되어 있는데, 직행버스와 완행버스가 동시에 버스회사별로 자유롭게 운행되고 있는 듯하다. 이번 버스는 말 그대로 모든 정류장을 거치는 완행버스. 

장작 6시간을 이 더럽고 불편한 버스와 함께 해야 하다니... 답답하고 짜증 난 마음이 앞섰지만, 스플리트에 적당한 시간에 도착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2시간가량 내륙도로의 지루한 운행이 끝나자 반전이 이어졌다.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할 때에나 기대했던 풍광이 펼쳐진 것이다.


직행버스들이 내륙의 지루한 산 중턱을 운행해 시간을 벌어준다면, 완행버스들은 구불구불한 달마티아 해안을 따라 천천히 아드리아 해의 바다를 선사해 주었다. 푸른 아드리아해의 시작이었다. 석회질의 하얀 바위산들이 아슬아슬한 산허리를 지날 때마다 속살을 보이듯 아드리아해가 보인다. 파도는 강한 지중해의 햇살을 받고 반짝반짝 춤을 추고 민둥산을 한 섬들은 바다를 맞대고 옹기종기 사이좋게 평화롭다.

예상치 못한 풍경에 아무도 불평을 말하지 못한 채 감탄의 탄식만을 자아낸다. 여정에 넣지 못해던 곳들을 비록 스쳐가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은 삭아지는 듯했다. 아담한 해안마을과 그곳에서 한가롭게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중간에 내려서 정말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해안이  지루해질 즈음 스플리트에 도착했고, 다음 목적지인 드브루브니크행 버스 티켓을 예약했다.


역시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완행버스로 선택하는 것이 정석, 반드시 오른쪽 좌석으로.


 


스플리트에서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겨주는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리바거리.




남쪽 항구를 상징하는 야자수 나무가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리바 거리를 지나 이번 숙소 아파트에 도착했다.

우리를 마중 나온 숙소의 주인은 첫인상이 까다로워 보이고 계산 빨라 보이는 깡마른 할머니였다. 예상 밖으로 만나자마자 이어지는 할머니의 엄청난 수다와 말투는 친절하고 다정했다. 본인이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무거 워보이는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몇 번이나 손을 내미셨다. 물론 번번이 거절했고 무려 4.5층의 계단을 올라 다락방처럼 보이는 예쁜 집의 문앞에 도착했다.

아파트는 100년이 넘어 오래되었지만 내부는 할머니의 애정과 손길을 받아 반짝반짝 거리는 마룻바닥을, 지금도 겨울에는 직접 거주하신다는 말씀처럼 관리가 잘되어 깨끗하면서도 가구부터 그림까지 손때 묻은 오래된 느낌이 정이 가는 집이었다. 창밖으로는 아드리아해의 지는 저녁노을이 우리를 맞아 따스한  붉은빛으로 환영해 주고 있었다.


우리의 일정을 물어보시더니 할머니는 오래 이곳을 지키던 주민으로서 아주 강력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트로기르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는다면 이곳을 온 목적이 훼손되리라 주장했고, 원래의 예정지였던 흐바르섬에 그다지 기대가 없던 차에 일정을 변경해 그냥 지나치려 했던 의심 없이 할머니에게 동의하며 트로기르를 보기로 결정했다.

더구나 마지막 날 아침식사 자리에서 말씀하셨던 우리나라의 남북문제에 대한 관심은 놀라웠다. 아마도 크로아티아가 가진 내전의 상처가 우리의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첫인상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심술궂지만 전형적인 유럽의 할머니와 닮아있었다. 하지만 유머도 여유도 넘쳤던 멋진 분으로 기억된다.




늦은 오후 올드타운의 로마 유적지를 먼저 구경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스플리트의 상징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자신의 노후를 위해 지은 궁전으로 아바르족이 침입을 해 성이 크게 부서졌다가, 주민들이 부서진 유적의 돌과 기둥을 모아서 그들 방식으로 복원했고 지금은 상점이나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중세 초기에는 궁전 안에 도시가 있었지만, 이후 상업이 번창하면서 집중적으로 건물이 들어서자 궁전 바깥으로 구시가지가 미로처럼 퍼져나갔다. 1700여 년 전의 고대 로마 유적 중 보존 상태가 좋은 곳이며, 로마 유적에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보존도 잘 되어있는데다 로마 시대의 유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대의 황제는 … 나더러 이곳의 평화와 행복을 다른 것과 바꾸라고 감히 권하지 못할 것이오…"


디오클레티아누스, 두 번째 임기 제안을 거절하며 했던 말이란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대리석을, 스플리트 주변 섬에서 구한 석회암을 가져다가 궁전을 지었는데, 심지어 이집트의 스핑크스까지 가지고 와서 궁전을 꾸몄다고 한다. 넓은 도로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동서남북 4구역으로 나누고 각각 네 개의 문이 있는데, 동문 실버 게이트는 그린 마켓, 철의 문이라고 불리는 서문 아이언 게이트는 마르몬토바 거리, 남문 브론즈 게이트는 리바 거리, 북문 골든게이트는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과 연결되어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열주광장



리바거리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남문 브로즈 게이트와 연결된 지하 기념품 시장을 지나면 나오는 열주 광장 peristylium 은 총 16개의 기둥이 늘어서 있는 탁 트인 공간으로 서쪽의 아치 모양 건축물은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의 주택들로 끝이 난다. 로마시대에는 황제가 각종 행사를 개최하던 장소인데, 계단에서는 광장에서 열리는 음악회나 공연을 보면서 느긋하게 앉아 커피나 맥주를 즐길 수 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찾아와 보니  앉을자리조차 없이 사람들이 많았다.

중앙에 있는 책을 엎어놓은 모양의 박공지붕을 지지하는 네 기둥이 있는 기념비적인 문을 통과하면 천정이 뻥 뚫린 돔 VESTIBULE 이 나온다. 주로 황제를 만나기 위해 귀족이나 사신 등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대기했던 곳으로,  가끔 노래 부르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데, 오늘도 특별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궁전의 북문을 통하는 방향으로 스플리트의 중심 성당인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Katedrala Svetog Duje 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로 건물은 팔각형의 본당과 종탑이 있는데, 각각 성모와 스플리트의 수호성인인 성 도미니우스에게 헌정된 것이다. 팔각기둥 건물은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였는데, 나중에 대성당으로 개축되면서 수호성인인 도미니우스의 이름이 붙어졌다.

성 도미니우스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 순교한 대주교로, 이 기독교 박해의 주인공이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였다고 게다가 성당을 개축하면서 황제의 시신이 사라졌는데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하니 좀 무섭기도 하다. 대성당의 종탑은 스플리트의 가장 대표적인 전망대로 광장은 좁고 탑은 높아서 고개를 꺾어야만 종탑의 꼭대기를 볼 수 있다.

궁전과 빨간 지붕의 구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고 하나, 나는 그 전망대 오르지는 못했다. 트로기르에서 종탑을 올라가보리라 마음먹으면서.





북문에 해당하는 ‘골든 게이트’ 로 나가면 크로아티아 안의 존경을 받는 종교 지도자이자 크로아티아 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레고리우스 신의 거대한 동상이 있는데, 특히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여행자들이 그의 엄지발가락을 만지고 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슬쩍 그의 엄지발가락을 만지는 것을, 다만 소원 비는것을 잊어버렸다는.

서쪽문인 '철의 문’ 방향으로 들어서니 바닥은 흰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주위에는 오픈 카페들이 들어서 있는 나로드니 광장이 나온다. 중세에는 공동생활의 중심지이자 중앙에는 시계탑이 있어 지금은 만남의 장소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작아 보였지만 활기차 보였다. 가운데 있는 이탈리아풍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구시청 사는 지금은 민족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쉽게도 시간이 늦어 들어가보진 못했다.





지하시장에서 남쪽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바로 도착하는 곳이 리바 거리 Riva다.

‘리바’란 크로아티아어로 넓은 보행자 도로를 뜻하는 말로, 달마티아 일대에서는 해안을 따라 길게 조성된 산책로를 의미한다고. 넓은 보행자 도로를 중심으로 길 한편에는 항구와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맞은편에는 구시가 담벼락과 높이 뻗은 야자수, 분위기 있는 노천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햇살이 좋은 아침과 해질 무렵의 풍경이 각각 다르다.

바거리가 끝나는 지점쯤이 되면 대리석 바닥이 반짝반짝 빛나는 마르몬토바 거리 Obala Marmontova가 나온다. 스플리트의 대표 쇼핑거리로 구시가지의 건축 양식 건물을 사이에 두고 크로아티아 브랜드뿐만 아니라 알 만한 브랜드숍들이 즐비해 있다. 옛날 건물에 들어선 현대식 제품들이 이질감을 주는 동시에 묘한 조화를 이룬다. 건물의 위층에 있는 방들은 대부분은 방문객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마르얀 언덕 전망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산책터로도 애용되던 곳으로 언덕 전체가 넓은 공원으로 구시가 서쪽 언덕의 끝 지점에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마침 숙소와 가까운데다 저녁노을이 질 때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해서 계단을 힘겹게 올라왔지만, 울창한 숲과 나무에 가려 시가지는 한눈에 들어오진 않아 약간 아쉬운 풍경이었다.

물론 해질 녘 아드리아해 바다와 언덕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은 충분히 아름다웠던 산책길이었다.




마리안 언덕에서 바라본 스플리트 구시가


매거진의 이전글 Croatia를 탐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