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선배들(내가 후배지만 나이가 훨씬 많은 이 현실은 뭐람ㅋㅋ)이랑 앉아서
수다를 떨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는 요즘에 대학교에 출강을 나가서 대학생들에게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마다 학생들 수준 차이는 당연히 날 수 밖에 없는 거겠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니 학교마다 학생들의 '태도'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초보 디자이너 또는
디자이너 지망생들 중에 간혹 이런 친구들이 있다.
'나만의 디자인을 확립할거야'
나도 대학생 때 웹디자이너를 해야지 마음 먹고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세상에는 없는 아주 획기적인 웹사이트를 만들어야지'
어떤 UI/UX를 쓸 건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아니 그 당시엔 UI/UX 단어조차도 몰랐었다.
그렇게 디자인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왔고, 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칭찬을 받기도 했고 무시를 당하며 눈물 쏙 뺀 일도 있었고
상사에게 까이면서 속 상한 일도 많았고
디자인 베이스가 부족한가 싶어서 대학원에 와서 디자인 공부도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나만의 디자인은 확립하기에는 수 많은 베이스가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디자인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디자인이 '융합 학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므로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심리학' 공부는 필수다.
'어떻게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것인가'가 디자인의 관건이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사람 마음을 사로 잡는 6가지 법칙>
1. 상호성: GIVE AND TAKE
2. 일관성: 한결같음 "변화는 있지만 변함은 없기를"
3.사회적 증거: 정확한 수치를 제시해야함
4. 호감
5. 권위
6. 희귀성
서로 주고 받는 게 있어야하며,
신뢰를 위해 일관성있게는 말하되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는 있어야하고
신빙성을 제공하기 위해 수치적인 자료를 제시하면 좋으며
호감이 있거나 희귀성이 있으면 설득하기 좋고
권위가 높을 수록 설득하기가 쉬워진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서 상대를 설득해야하기에 디자이너는 표현력도 좋아야하고, 그래서인지 디자인 공부하면서 독서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깔려야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 기본 지식"이다.
예를 들면 조형, 색채, 그런 것들?
조형을 알아야 레이아웃이 나오고
색채를 알아야 마지막 한 방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뿌리가 되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저런 것들이 모두 준비 되었다고 해서 열매를 맺는 분야가 아니다.
디자인은 융합 학문이다.
디자인은 디자인 자체만으로 빛을 발할 수 없다.
무언가를 표현해내는 것이 디자인이므로 '무엇을 표현해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현 해 내야하는 것'에 대한 기본 지식 또한 필요하다.
예를 들면 웹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웹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웹의 기능, 웹의 속성
나의 경우 코딩을 할 줄 알기에 웹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있고 '보여주기 식'의 디자인보다는 '사용하기 편한' 디자인을 매우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내 디자인은 정말 심플 그 자체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무 단순하다고. 디자인을 하다 말았냐고.
그런데 누군가는 나의 디자인을 보고 베스트 디자이너라며 엄지를 세워준다.
세계 명화조차도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수 없다.
하나의 작품을 보고도 누군가는 전율을 느낄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스쳐가는 작품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니까.
그래서 나만의 디자인을 확립하다보면 나와 취향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일 자체도 즐거워진다.
그런데...!
학부생은 뿌리를 내려야할 단계다.
한참 디자인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서 공부하고
전시회를 다니며 안목을 키워야하고
핀터레스트를 뒤져보며 누구는 이렇게 했구나 배워야하고
잘 됐다 싶은 작품을 보고 흉내를 내면서 익혀보기도 해야하고
흉내를 내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내 것도 추가해보고.
그런 것이 필요하다.
어디서 봤더라. 여튼 이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자기만의 것을 만들지 않고 2류, 3류 작품을 보고 카피하기에 바쁘다. 할거면 1류를 카피하면서 배우던가. 그것도 아니다."
아직 뿌리를 한참 내려야할 그 시기에
"전 저만의 디자인이 확립되어있어요"라면서 누군가의 것을 습득할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곧 은퇴를 앞둔 디자이너의 사고 방식이지 않을까?
그 어느 직종보다 흡수력이 뛰어나야하는 곳이 디자인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막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한 아직 뿌리도 내리지 않은 친구들이,
나만의 디자인을 확립하는 거라며 스승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고집을 세운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훗날에 일을 하며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친구는 과연 누구를 위한 디자인을 할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어떤 분야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세상에 살아남는다.
디자인은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바꿔줘야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 기본 베이스도 없이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디자인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