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ing the dots
아이와 책을 자주 읽는다. 신생아 시절부터 모빌 보여주듯 책을 자주 보여주었고, 요즘은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꺼내오면 읽어주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최근 자주 읽는 책 중에 점과 선, 면에 대한 그림책이 있다. 점 친구들이 모여서 선을 만들고, 선 친구들이 모여 면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연설문 중 하나이자 내 블로그에 항상 적혀있는 글귀의 모티브인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문이 생각났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언급하며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없고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 지어 볼 수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 연결된다는 것(connecting the dots)을 알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나 실망스럽고, 처참하게 실패한 경험처럼 보여도 그러한 과거의 경험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용기가 모여 내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 연설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나 역시 연설 영상을 보고 연설문 전문을 따로 저장해 두었을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나는 그가 말한 내 인생의 여러 가지 사건(점)이 모여 나의 인생의 길(선)이 되고, 그 길들이 모여 또 다른 세계(면)를 열어주는 경험을 적지 않게 해왔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과거의 내가 쌓아온 경험이 나의 특장점이 되어 빛을 발하는 순간. '아, 내가 이걸 하려고 그때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졌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런 순간을 자주 접하곤 한다. 혼자서 목을 가누는 것도 하지 못하는 한 아이가 어른인 부모가 느끼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성장을 거듭한다.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싶었던 순간들이 모여 어느 순간 아이는 목을 가누고, 스스로 몸을 뒤집고 마침내 일어나 스스로 걷는다. 이미 그것을 해낸 어른의 관점에서 ‘저 아이가 왜 저럴까?’ 싶어 답답하고 때론 화가 치밀어 오르고, 이해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아이는 어느샌가 새로운 도전을 완수하고 뿌듯하게 어미인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이 전 세계를 덮치며 우리의 삶은 많은 곳에서 변화를 맞이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내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한다.
아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보다 뛰어난 존재이므로 우리가 몇 개의 점만 좋은 방향으로 잘 찍어주면 그것을 단단하고 멋진 선으로 이어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모여 우리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멋진 면, 멋진 신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물론 내가 느낀 것처럼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좌절감도 맛볼 것이고, 때로는 인생의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스스로가 가진 능력을 믿고 타인의 잡음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점들이 모이고 모여,
멋진 선이 되고, 넓은 면이 되듯이.
All images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