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연말 격리생활 - 1

확진자 2명과 감금되다

by 일상채색가 다림

2021. 12. 20. 월요일 - 심상찮은 기침 소리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다. 평소 같으면 점심시간에 병원 가보라 한마디 하고 말 정도였지만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 시점에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기침 소리였다. 남편은 회사에 들려 상황을 설명한 후 바로 보건소로 갔고, 검사를 받은 후 귀가를 했다. 감기 기운이 있었던 날부터 남편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나는 "내일 음성 통보받으면 이비인후과부터 가봐~"라고 말하며 여유를 부렸다.


아.. 그것은 나의 경기도 오산이었다.


오전 11시. 평소와 다르게 아이가 컨디션이 처지는 것 같더니 거실에서 졸기 시작했다. 아직 졸려할 시간이 아닌데... 졸려하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며 부랴부랴 점심을 차렸다. 밥을 먹자고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데 몸이 평소와 다르게 뜨끈했다. 체온을 재보니 39도.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잘 놀던 아이가 이렇게 난데없이 갑자기 39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다잡고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인 뒤 뭐라도 먹이고 재워야겠다 싶어 준비해둔 밥을 한 숟갈 떠먹였다. 한 숟갈 받아먹은 아이가 갑자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울기 시작하더니 분수토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입에서 좔좔 나오는 토를 받아내며 멘탈은 이미 날아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며, 놀라 우는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이상하면 바로 병원 진료를 받는 편인데, 남편이 오전에 받고 온 코로나 검사가 걸렸다.


만약에 남편이 양성이고, 이미 아이에게 전염이 된 것이라면 소아과를 방문했다간 큰 사단이 벌어진다. 지금 병원을 데려가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 범벅이 된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며 내일 남편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는데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던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우리 팀 OO가 확진이래....


남편 옆자리에 앉는다는 같은 팀 동료가 주말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순간 온몸의 세포들이 하나하나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망했다... 정말 망한 거야... 갑자기 고열이 나기 시작한 아이의 상태 또한 단순 열감기 따위로 끝날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리고 아이가 낮잠에서 일어나자마자 나는 아이를 들쳐 안고 보건소로 갔다.




2021. 12. 21. 화요일 - 문자를 기다렸지만...


밤새 아이는 열이 계속 났지만 해열제 교차 복용(아세트아미노펜 계열과 이부프로펜 계열의 해열제를 교차로 번갈아가며 먹이는 방법. 해열제를 먹였음에도 열이 안 떨어지는 경우 교차 복용을 한다)을 하니, 다행히 새벽 3시 이후엔 38도 이하로 떨어졌다. 미열은 지속되었지만 분수토 시전 이후 아이의 컨디션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활발했고, 평소처럼 아이와 함께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문자를 기다렸건만



전화가 올 무렵, 남편과 나는 '양성이면 보건소에서 전화가 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그런 대화를 나눌 때 걸려온 전화 한 통. 031로 시작하는 번호를 보자마자 직감이 왔다.


아... 확진이구나.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전화를 받으니, 역시나 그 전화는 보건소 전화였다.


하율이가... (한 박자 쉬고) 양성 판정이 나왔어요.
어머님도 검사하셨나요?"


벨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예감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옆에서 땅이 꺼지는 듯한 남편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보건소 직원이 내 검사 결과를 검색하는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나마저 양성이 나올까 가슴을 졸였다. 남편이 본격적으로 증상이 시작되기 전 나는 호텔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난 상황이었고 지금까지 아무런 증상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억겁의 시간 같은 2.5초가 흐르고 보건소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님은 음성이시네요. 아버님도 검사하셨죠? 성함 좀 알려주세요."


결과는 남편과 아이는 양성. 나만 음성이었다. 어제 세 가족 모두 검사를 한 후 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가장 최악의 케이스인 전원 양성부터 확률은 낮아 보이지만 전원 음성의 가장 희망적인 케이스까지. 우리가 받아 든 2명 양성, 1명 음성의 케이스는 굳이 따지자면 최악의 케이스에 더 가까운 결말이었다.


보건소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치료와 격리가 이뤄질지 담당자가 정해지면 전화를 주겠다고 했고, 그때까지는 마스크를 착용한 후 집 안에서 대기를 하라고 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우리 세명 모두 집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직원은 전화를 끊었다. 어제 코로나 검사 후 남편은 아무래도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아마 그도 그렇게 예감했을 것이다), 남편을 방에 격리시켰다. 아이의 상태가 충분히 의심스럽긴 했지만 우리 둘 다 아이만은 제발 음성이길 바라고 또 바랐기에, 음성일 확률이 높은 내가 온종일 아이를 돌봤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감염 초기에 가장 전파력이 강하다는데, 결국 나는 전파력이 가장 강한 시기를 지나는 30개월 아이를 온종일 돌본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억지로 직시하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뒤 내가 방에서 격리를 하는 것이 맞았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될 대로 돼라!라는 마음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재빨리 바통 터치를 한 뒤 남편이 격리하며 사용한 아이 방을 소독하고 그 방에서 내가 격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는 동안, 나와 남편의 핸드폰으로 보건소 직원, 나의 자가 격리와 남편과 아이의 치료 담당자, 병원 간호사실 등에서 수시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부서에서 하나의 일을 쪼개서 진행하다 보니 전화가 올 때마다 나와 남편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다. 이를테면 남편과 아이의 증상, 발현 시기 혹은 아이의 키와 몸무게 같은 정보들. 중요한 것이니 여러 번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도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아이의 양성 판정으로 예민해진 우리에게 수차례 같은 질문을 퍼붓는 행위는 피로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필요한 정보들을 잔뜩 쏟아낸 뒤 바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그들에게 겨우 타이밍을 잡아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그건 저희 담당이 아니다' 혹은 '그건 보건소(병원)에서 따로 연락 줄 거다. 기다려라'라는 딱딱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나와 나눈 대화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을 그들의 고충도 이해는 가지만 신종 전염병에 감염된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는 우리로썬 그들의 차가운 대답이 야속하게 들렸다.




2021. 12. 22. 수요일 - 곳곳에서 쏟아지는 구호품


먼저 보건소에서 보내는 격리자 및 치료자 키트가 도착했다. 체온계와 산소포화도 측정기, 간단한 상비약과 폐기물 처리 시 필요한 소독제와 비닐봉지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그렇다. 우리의 격리생활이 끝날 때까지 우리가 배출하는 쓰레기님들도 우리와 함께 격리를 해야 한다. 그 말인즉슨, 우리 가족은 내년까지 아이의 똥기저귀를 이고 지고 함께 보내야 한다는 소리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더라면 배변 훈련부터 먼저 했을 것을 싶었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여러 종류의 체온계와 상비약을 구비하고 있어서 급한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늦은 저녁시간까지 확진자들의 격리 장소를 돌며 키트를 나눠주고 있을 누군가의 노력이 고마웠다.


이 사단이 시작된 후 나는 주말에 만났던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이 상황을 알렸다. 가족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아이와 보낸 우리 가족이 두 명이나 확진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을 어쩌겠냐며 가볍게 감기 앓듯이 앓고 무사히 격리를 끝내자며 서로를 위로했다.


내가 아이와 남편의 몸상태만큼 걱정이 된 것은 주말에 내가 만난 지인들이었다. 지난 월요일, 나는 주말에 만났던(18~19일)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해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무증상이며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혹시 모르니 코로나 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했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내가 의도했거나, 알면서 사람들을 만난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그들에게 큰 폐를 끼치게 될까 너무 두려웠다. 만난 이들 대부분이 나처럼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었기에, 내가 감염경로가 되어 그녀들의 아이들, 남편들에게도 피해가 갈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정말 고맙게도 그들은 나를 먼저 걱정해주고 다독여주기 바빴고, 전원 음성 판정을 받으며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구호물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종 배달 앱 쿠폰과 상품권부터 치킨 배달 상품권, 샌드위치와 커피, 하율이가 평소 자주 먹는 간식과 빵, 상비약, 아이용 유산균, 밑반찬 등등... 그들은 나의 소식을 듣자마자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열정적인(!) 구호의 손길과 정성스러운 위로를 보내주었다. 특히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소통했던 지인들이 보내주는 구호 물품은 내가 지금까지 너무 타인에게 인색하게 굴며 살았다는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할 만큼 따뜻하고 소중했다.


구호물품뿐만 아니라 나의 이 상황을 알게 된 모든 이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두려움으로 앞이 캄캄했던 나에게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큰 위안을 주었다. 연말까지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줌이지만!) 만나고 있는 오소희 작가님(우리의 소희 언니!) 역시 불안했던 내 마음을 '연말 휴가 받았다고 생각하고 셋이서 오붓하게 시간 보내면 되겠네.' 라며 느긋하게, 사안의 좋은 측면을 볼 수 있는 시야를 선물해 주었다. 마침 파이널 에세이 제출 기한이 이번 주말인데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갇혀 보내게 된 덕분에 여유롭게 글을 쓰고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게 된 것도 이번 격리 생활의 큰 장점..... 이 아니라 유일한.. 장.. 점...... 이 되려나... 허허허.



슬기로운 격리는 걸세와 함께



무엇보다 이제 겨우 30개월인 아이가 양성 판정을 받아 이틀 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아직 말문이 조금씩 트이는 단계라 정확히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픈지를 알 수 없는 아이인데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다는 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발열 외에 다른 증상은 없고, 지정 병원 간호사실에서도 아이의 체온과 맥박, 산소포화도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체크해주고 있어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인다. 그저 남편과 아이가 지금처럼 경미한 증상만 치르고 무사히 10일간의 격리 생활을 끝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나는 7일간의 격리(7일 격리 후 무증상 + 코로나 검사 재실시 후 음성 판정이면 격리 해제), 남편과 아이는 10일간의 격리(10일 격리 후 증상이 모두 없어지면 격리 해제. 단, 10일 후에도 증상이 있으면 증상이 사라질 때까지 격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2021년 12월은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해로 남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방구석에서 맞이하게 될 2021년의 크리스마스.

확진자 두 명과 함께 슬기롭게, 옮지 말고, 싸우지 말고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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