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을 끓이며 찰랑찰랑 남아 있던 간장 한통을 마침내 다 비웠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맞벌이를 하던 시절의 나는 간장이나 찌개용 된장조차 유통기한 내에 다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 내 손으로 집밥을 만들어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지경이 되다니. 아직도 부엌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다.
주부의 생활은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쌀통이 바닥을 드러내고, 간장이나 참기름이 떨어져 가고, 다진 마늘을 새로 구입할 때마다 희열을 느끼면서도 하루에 몇 번을 채워야 하는 인간의 허기짐이 지겹게 다가온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나에게 부엌이 그렇다. 나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뿌듯함의 공간이기도 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내 삶의 지루함의 정점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2021. 12. 14.
탈탈 털어 쓴 조선간장 통을 헹궈 말리며-